한인들만 보는 라디오코리아 중고차 매물, '한 놈만 걸려라?' - Burbank - 1

요즘 와이프차가 말썽을 부려서 중고차 하나 살려고 페북 마켓플레이스도 보고 크레이그리스트도 본다.

그런데 습관처럼 라디오코리아 중고차 게시판도 꼭 확인한다.

이게 미국 살기 시작하면서 10년 넘은 습관이다.

버뱅크에 살다 보니 LA 한인타운 매물도 가까운 편이고, 혹시 괜찮은 차가 올라왔을까 하는 기대도 있다.

그런데 요즘 라디오코리아 중고차 매물을 보면 딱 한마디가 떠오른다.

'한 놈만 걸려라.'

미국 중고차 사이트를 돌아다니다 보면 가끔 상태좋고 저렴한 매물이 나온다. 굿딜이 뜨는거다.

보통 이사를 가거나 새 차를 사면서 기존 차량을 빨리 처분하려는 사람들이다.

물론 사기성 매물도 있지만, 잘 찾아보면 시세보다 저렴한 이른바 쿨매가 분명히 있다.

반면 라디오코리아에서는 희한하게 차는 늙었는데 가격은 늙지 않는거 같다.

가령 2008년식 혼다 시빅에 주행거리 27만 마일이라고 해보자.

이 정도면 자동차가 미국 대륙을 몇 번이나 횡단하고도 남을 거리다.

그런데 광고 문구는 언제나 화려하다.

'엔진 최상, 미션 최상, 컨디션 최고, 아무 문제 없음.'

가격 4,000달러. ㅎㅎㅎ 웃음만 나온다.

20년 다 된 자동차가 일발 시동이 무슨 특별한 옵션이라도 되는 모양이다.

솔직히 이 정도 차량이면 딜러에 트레이드인으로 가져가도 제대로 된 가격을 받기 어렵다.

실제로 대부분 딜러에서는 18년 연식 + 27만 마일 넘었다고 안산다.

그런데 딜러도 안사고 산다해도 트레이드인 조건으로 돈 천불도 주지 않을 차를 같은 한국 사람에게는 4천 달러씩 받고 팔겠다는 발상이다.

내가 장담하는데, 세상에서 돈 날리는 가장 쉬운 방법 중 하나는 이런 차를 가격 그대로 사서 다음 날 딜러에게 트레이드인 하는 것이다.

더 기가 막힌 건 이런 매물이 한인 커뮤니티에만 유독 많이 올라온다는 사실이다.

미국에 처음 와서 영어가 서툴거나 자동차 거래 경험이 부족한 사람들은 한인 사이트를 찾는다.

한국말로 거래할 수 있고 같은 한국 사람이라는 믿음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믿음이 비싼 가격을 받아낼 기회가 된다면, 그건 같은 한국 사람이라는 점을 이용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한국 사람끼리 너무한 것 아닌가?

물론 얼마에 팔겠다는 건 판매자 자유다.

1,000달러짜리 차를 10,000달러에 올려도 알게뭔가? 법적으로 문제도 없고 미국에서 이런건 아무 상관없다.

하지만 그 가격이 합리적인지는 전혀 다른 문제다.

요즘은 KBB나 에드먼즈에서 시세를 확인할 수도 있다.

그런 세상에서 터무니없는 가격을 붙여놓고 누군가 사주기를 기다린다면, 결국 시세를 모르는 사람을 찾겠다는 이야기처럼 들린다.

차라리 솔직하게 '오래됐지만 아직 잘 굴러갑니다. 저렴하게 가져가실 분 찾습니다'라고 하면 얼마나 좋은가.

가격 팍팍 네고 가능해드릴께요 하면서.

그런데 27만 마일을 달린 차에 '최상급 컨디션'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고 4,000달러를 요구하면, 자동차를 파는 건지 판매자의 희망 사항을 파는 건지 모르겠다.

사실 더 씁쓸한 건 이런 중고차를 찾는 사람들이 대부분 돈이 넉넉하지 않다는 점이다.

돈 없는 사람의 사정을 가장 잘 알 만한 사람들이 오히려 그 주머니를 노리는 듯한 모습이다.

물론 세상살이가 원래 그렇다. 가난하다고 모두 양심적인 것도 아니고, 같은 한국사람끼리 도와주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미국 중고차 사이트에서는 합리적인 쿨매를 어렵지 않게 발견하는데, 정작 한인 커뮤니티에서는 왜 이렇게 터무니없는 가격이 눈에 띄는지 씁쓸할 뿐이다.

앞으로도 나는 라디오코리아 중고차 게시판을 볼 것이다. 10년 넘은 습관이 어디 가겠나.

다만 이제는 자동차를 구경하는 것보다 판매자의 자신감을 구경하는 재미가 더 크다.

딜러도 제대로 된 가격을 쳐주기 어려운 차를 같은 한국 사람에게 비싸게 떠넘길 생각부터 하지 말자.

한 놈만 걸려라?

그 한 놈도 진짜 돈 벌기 힘든 미국에서 살고 있네 이사람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