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스틴 집값이 한창 치솟던 2022년 봄, 저도 결국 집을 샀습니다.
팬데믹이 끝나가던 시기였고, 뉴스에서는 연일 "지금 안 사면 평생 못 산다"는 분위기가 흘러나왔죠.
캘리포니아에서 사람들이 계속 어스틴으로 이주하고, 테슬라를 비롯한 대형 테크 기업들이 몰려오니 집값은 앞으로도 계속 오른다는 이야기가 넘쳐났습니다.
저 역시 아이가 둘이라 언제까지 렌트만 살 수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한국 부모님께서 도와주시고, 처가에서도 대출 보증까지 서주셔서 어렵게 내 집을 마련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가족 모두가 새로운 집에서 오래 행복하게 살 일만 남은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시장은 제 기대와 정반대로 움직였습니다. 제가 집을 산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어스틴 집값은 고점을 찍고 내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시세를 보면 제가 산 가격보다 약 15% 정도 낮습니다. 가끔 계산기를 두드려 보면 다운페이먼트로 넣었던 돈 상당 부분이 종이 위에서 사라진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매달 모기지와 재산세를 낼 때면 "조금만 더 기다릴 걸"이라는 후회가 밀려오기도 했습니다.
처음 1년은 정말 집값만 보고 살았습니다. 부동산 사이트를 하루에도 몇 번씩 열어보고, 옆집이 얼마에 팔렸는지, 우리 동네 시세가 또 얼마나 떨어졌는지 확인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새집에 살아도 마음은 전혀 편하지 않았습니다. 거실 소파에 앉아 있어도 집의 가치부터 생각났고, 숫자가 내려갈수록 제 인생도 실패한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깨달았습니다. 내가 이 집을 당장 팔 것도 아닌데 왜 매일 가격표만 들여다보고 있지? 집값이 15% 내려갔다고 거실이 15% 줄어든 것도 아니고, 아이들 방 하나가 없어진 것도 아니었습니다. 아침마다 커피를 마시는 주방도 그대로였고, 퇴근 후 가족과 저녁을 먹는 식탁도 그대로였습니다.
요즘은 집값보다 아이들을 더 많이 보려고 합니다. 아이들도 어느새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니 예전처럼 하루 종일 손이 가지는 않더라고요.
어릴 때는 밥 먹이고 씻기고 재우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없었는데, 이제는 자기들끼리 숙제도 하고 친구들이랑 놀기도 합니다.
물론 사춘기가 시작되면 또 다른 걱정이 생기겠지만, 적어도 몸은 조금씩 편해지고 있다는 걸 느낍니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이야기합니다. "조금만 더 힘내자. 아이들도 크고 있고, 우리도 결국 이 시간을 지나갈 거야."
그리고 기분이 정말 바닥인 날에는 아무 말 없이 순동이 우리 개를 바라봅니다.
개는 집값도 모르고, 금리도 모르고, 경제 뉴스도 모릅니다. 제가 차세우면 미리알고 가라지 입구에서 꼬리를 흔들며 반겨주는 게 전부입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내가 지금 너무 숫자에만 매달려 살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사람은 미래를 걱정하며 살지만, 개는 오늘 하루만 행복하면 된다는 걸 몸으로 보여주는 것 같았습니다.
물론 현실적인 준비는 해야 합니다. 대출 부담을 관리하고, 재산세 감정가 이의신청도 해보고, 비상금도 마련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런 준비와 끝없는 걱정은 다른 문제라는 걸 이제는 조금 알겠습니다.
마흔이 되고 나니 인생의 모든 선택을 완벽한 타이밍에 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주식도 바닥에서만 살 수 없고, 집도 꼭 최저점에서만 살 수는 없습니다.
당시에는 그것이 가족을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고, 지금은 그 선택을 잘 지켜내는 것이 제 역할입니다.
결국 행복은 집값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이들이 웃으며 뛰어다니는 소리, 주말에 개들과 산책하는 시간, 가족이 함께 저녁을 먹는 평범한 하루가 훨씬 큰 행복이었습니다.
시장은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하겠지만, 내 삶은 오늘도 계속됩니다.
결국 행복은 남이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과 내 선택이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습니다.


바다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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