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덴버에서 오래 산 한국 사람들한테 "옛날에 여기 한인들은 무슨 장사를 많이 했어요?" 하고 물어보면 대답이 거의 비슷해요.
영어 잘 못해도 일찍 시작하고 늦게까지 성실하게 일하면 되는 일들인 세탁소, 리커스토어, 샌드위치 가게, 작은 식당 같은 거죠.
사실 LA나 뉴욕이나 별 차이가 없었어요. 1980~90년대 미국에 온 이민 1세대가 영어를 그렇게 잘한 것도 아니고 미국 회사에 취직하기도 쉽지 않았으니까요.
결국 내 가게 하나 차려서 부부가 아침부터 밤까지 죽어라 일하는 게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었던 거예요.
그런데 덴버가 재미있는 게 1990년대 들어서면서 캘리포니아에서 이쪽으로 넘어온 한인들이 꽤 있었어요.
특히 1992년 LA 폭동 이후였죠. LA 폭동으로 한인타운에 정떨어지고 노스리지 지진까지 나서 프리웨이 끊기고 하니까 캘리포니아를 떠나 덴버로 오려는 한인들이 좀 있었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여기와서 하던 비즈니스가 세탁소, 샌드위치숍, 리커스토어, 선물가게, 패스트푸드점 같은 것들이었다고 해요.
그때 덴버에 있던 한인 리커스토어 업주는 자기가 알던 한인 리커스토어 주인이 예전에는 10명 정도였는데 나중에는 100명 정도까지 늘었다는 이야기도 했어요.
생각해 보면 이해가 갑니다.
그 당시 캘리포니아 집값에 비하면 덴버 부동산은 반정도로 쌌고, 치안이나 아이들 학교 때문에 이쪽으로 오는 집들도 있었거든요.
그때 한인들에게 덴버는 뭐랄까, 대박 한번 터뜨려 보겠다고 오는 도시라기보다는 "여기서 열심히 하면 그래도 먹고살 수 있겠다" 하는 도시였던 것 같아요.
그런데 지금 덴버 한인 상권을 보면 완전히 달라졌어요.
일단 중심부터 덴버 다운타운이 아니라 오로라(Aurora)예요.
South Havana Street나 Parker Road 쪽으로 가보면 한국 식당이며 마켓이며 미용실이며 이것저것 한인 업소가 꽤 보입니다.
아예 'Koreatown Aurora'라는 이름까지 사용하고 있으니까요.
마켓도 그렇습니다. M Mart가 1983년에 문을 열었으니 벌써 40년이 넘었어요.

엘에이 가주마켓처럼 덴버 한인들에게는 정말 익숙한 곳이죠.
지금은 H Mart 같은 대형 한국 마켓까지 있으니 세상이 얼마나 편해졌어요.
예전에는 한국 음식 하나 사려면 어디 가야 하나 찾아다녔는데 지금은 웬만한 건 다 구할 수 있습니다.
식당은 더 많이 변했어요. 예전 한식당 하면 메뉴판에 불고기, 갈비, 비빔밥, 된장찌개가 쭉 적혀 있는 식이었잖아요.
지금은 순두부 하는 집 따로 있고, 순댓국, 한국 치킨, Korean BBQ, 핫팟, 디저트 카페까지 완전히 전문화됐어요.
그리고 손님도 한국 사람만 오는 게 아니에요. 이게 제일 큰 변화인 것 같아요.
옛날에는 한국 사람이 가게 열어서 한국 사람 상대로 장사했다면 지금은 미국 사람들이 한국 음식을 찾아옵니다.
K-pop 듣고 한국 드라마 본 젊은 미국 사람들, 군기지에 일하는 미국사람들이 동료,친구들 데리고 와서 고기 구워 먹고 소주도 시키고 그러잖아요.
30년 전 한인 이민자들이 이런 모습을 상상이나 했겠어요.
반대로 세탁소나 리커스토어 같은 옛날 한인 대표 업종은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사실 부모님이 하루 12시간씩 가게에 붙어 있는 모습을 보고 자란 자녀들이 "나도 커서 이거 해야지" 하는 경우가 얼마나 되겠어요.
그래서 덴버 한인 경제를 보면 미국 한인 이민 역사가 그대로 보여요.
옛날에는 영어 조금 못해도 부부가 죽어라 일해서 가게 하나 일으키는 게 성공이었다면 지금은 그 자녀들이 전문직으로 가고, 한인 식당은 한국 사람만 상대하는 장사가 아니라 미국 사람에게 한국 문화를 파는 비즈니스가 됐습니다.
예전 덴버 한인 경제의 간판이 세탁소와 리커스토어였다면 지금은 오로라의 Korean BBQ와 한국 마켓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 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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