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회사에서 일하다 보면 마흔 넘은 동료가 "this is my best friend"라고 스스럼없이 소개하는 장면을 꽤 자주 봅니다.
처음엔 그게 좀 낯설었어요. 한국에서 베스트 프렌드라는 말은 아무래도 학창 시절 단짝을 가리킬 때 쓰는 느낌이 강하잖아요.
그런데 미국에서는 사십대, 오십대 어른들도 이 표현을 아무렇지 않게 씁니다. 왜 그런 건지 궁금해서 한번 찾아봤어요.
미국 여론조사기관인 서베이센터온아메리칸라이프가 2021년에 성인들에게 물었더니 59퍼센트가 스스로 베스트 프렌드가 있다고 답했다고 해요.
1990년 같은 조사에서는 이 비율이 75퍼센트였다고 하니, 30년 사이에 꽤 줄어든 겁니다.
가까운 친구 숫자도 마찬가지예요. 1990년 평균 2.94명이던 게 2021년에는 2.23명으로 내려갔더라고요.
친구가 아예 없다고 답한 사람도 늘었습니다. 1990년에는 3퍼센트였는데 2021년에는 12퍼센트까지 올라갔거든요.
특히 남성 쪽 변화가 컸어요. 친구가 하나도 없다는 남자 비율이 1990년 3퍼센트에서 2021년 15퍼센트로 다섯 배나 뛰었다고 하네요.
숫자만 보면 미국도 사람 사귀기가 예전만 못한 시대인가 싶어서 좀 씁쓸했습니다. 스포츠 팀이나 동호회에서 어울릴 기회가 줄어든 것도 한몫했겠다 싶었어요.
그런데 재밌는 지점이 하나 있어요. 베스트 프렌드가 있다고 답한 사람들은 평균적으로 그 자리에 두 명 정도를 올려놓는다고 하네요.
즉 미국에서 베스트 프렌드는 세상에 딱 한 명만 앉는 자리가 아니라는 뜻이에요. 여러 사람한테 동시에 붙일 수 있는 호칭인 거예요.
생각해보면 미국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BFF라는 줄임말을 스티커나 팔찌에 새기고 다닐 만큼 이 표현에 익숙합니다. 그렇게 자란 사람들이 어른이 돼서도 굳이 다른 말로 바꿀 이유가 없었던 거겠죠.
직장 쪽에서는 더 흥미로운 사례가 있습니다. 갤럽이라는 여론조사 회사는 직원 몰입도를 재는 설문에 아예 나는 직장에 베스트 프렌드가 있다는 문항을 넣어놨거든요.
사적인 질문 같아 보이지만 사실은 신뢰 관계를 확인하려는 지표라고 해요. 이 문항에 그렇다고 답한 직원은 그렇지 않은 직원보다 업무에 몰입할 확률이 일곱 배나 높게 나왔다고 합니다.
실제로 이 질문에 그렇다고 답하는 직원은 열 명 중 두 명 정도밖에 안 된대요. 흔한 사이는 아니면서도 회사가 공식 설문 문항으로 챙길 만큼 중요하게 본다는 거죠.
여기까지 보면 답이 좀 보이는 것 같아요. 미국에서 베스트 프렌드는 나이나 격식과 상관없이 그냥 이 사람은 믿고 편하게 지내는 사이라는 걸 드러내는 표현에 가깝습니다.
한국에서는 절친이나 베프라는 말을 아무한테나 붙이면 오히려 가벼워 보인다고 여기는 분위기가 있잖아요. 반면 미국에서는 이 표현을 아끼기보다 자주 꺼내 쓰는 쪽이 자연스러운 것 같더라고요.
한인 커뮤니티 안에서도 이런 차이가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또래끼리는 절친이라는 말을 곧잘 쓰다가도, 나이가 들면 괜히 유치해 보여서 안 쓰게 되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저도 동네 스포츠 리그에서 몇 년 알고 지낸 팀 동료가 저를 스스럼없이 베스트 프렌드라고 부르는 걸 듣고 처음엔 좀 어색했어요. 만난 지 몇 년밖에 안 됐는데 그런 호칭을 붙여도 되나 싶었거든요.
지금 와서 생각하면 그게 오히려 마음을 먼저 여는 방식이었던 것 같습니다. 관계에 등급부터 매기는 대신, 일단 믿는다는 말을 던지고 시작하는 거니까요.
새로운 사람한테 먼저 마음을 열어 보이는 것도 일종의 도전이라면 도전이죠. 손해 볼 것도 없는데 못 할 이유는 없다고 봅니다.
나이 들수록 사람 사이에 벽을 세우는 게 더 쉬워지는데, 이런 식으로 먼저 마음을 여는 말버릇 하나는 저도 배워볼 만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CandyR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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