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기 덴버 생활을 하다 보면 다른 도시보다 군 관련 사람들을 접할 기회가 제법 있다.
군사도시인 덴버답게 덴버 동쪽 오로라에는 Buckley Space Force Base가 있고, 현역뿐 아니라 National Guard, Reserve, 군무원과 국방 관련 종사자들이 상당히 많은 지역이다. 기지 안에는 460th Medical Group도 있어 군 의료진이 근무한다.
그러다 보니 의사나 치과의사 같은 의료직으로 군에서 근무하는 사람들도 접하게 된다. 이 사람들을 보다 보면 자연스럽게 드는 생각이 있다.
"우리 아이도 공부만 잘한다면 군을 통해 의사가 되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
실제로 있다.단, 먼저 알아둘 것이 있다.
군대에 입대하면 의대를 보내준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아이가 기본적으로 똑똑하고 공부를 잘해야 한다.
대학에서 의대 진학에 필요한 과정을 밟고 MCAT을 준비해 실제 미국 의대에 들어갈 실력이 되어야 한다.
여기에 군 생활을 견딜 성실함과 책임감도 필요하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HPSP(Health Professions Scholarship Program)다.
일반 미국 의대에 진학하면서 Army, Navy, Air Force 등의 장학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방식이다.
군에서 의대 등록금과 일정 비용을 지원하고 학생에게 생활비 성격의 월 지급금도 제공한다. 대신 의사가 된 후 군의관으로 일정 기간 복무해야 한다.
쉽게 이야기하면 부모가 의대 학비를 내는 대신 자녀가 졸업 후 자신의 몇 년을 군 복무로 갚는 구조라고 생각하면 된다.
또 하나는 USU(Uniformed Services University)라는 군 의과대학으로 가는 방법이다.

메릴랜드에 있는 연방정부 의과대학인데 학생들이 장교 신분으로 의학 교육을 받는다.
학비를 내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군인으로서 급여와 수당도 받는다. 대신 졸업 이후의 현역 의무복무 기간이 HPSP보다 길다.
한국 부모 입장에서 이 제도가 눈에 들어오는 이유는 역시 돈이다. 미국에서 자비로 의사를 만드는 비용을 계산해 보면 정말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만만치 않다.
AAMC가 제시하는 2026년 졸업생 기준 의대 4년 Cost of Attendance 중간값은 공립이 약 29만8천 달러, 사립이 약 40만8천 달러다.
의대 졸업생 가운데 빚이 있는 학생들의 2025년 부채 중간값도 21만5천 달러에 이른다.
그런데 이것은 의대만 계산한 것이다. 그전에 4년제 대학도 다녀야 한다. 만약 아이를 비싼 사립대에 보내고 다시 사립 의대까지 부모가 학비와 생활비를 모두 부담한다면 학부 입학부터 의대 졸업까지 들어가는 돈이 50만 달러를 넘어가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다.
학교와 장학금, 거주비에 따라서는 그보다 훨씬 커질 수 있다.
한국 부모들에게는 여기서 생각이 많아진다. 아이가 공부를 못한다면 돈이 있다고 의사가 되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공부를 잘하고 본인도 의사가 되고 싶어 하는데 부모가 50만달러 이상을 부담해야 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런 자녀라면 HPSP나 USU 같은 군 의료 프로그램을 적어도 한번 알아볼 가치는 충분하다.
특히 한국 부모들이 좋아할 만한 부분도 있다. 단순히 학비만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의대를 졸업한 뒤 군 의료 시스템 안에서 의사로 경험을 쌓게 된다는 점이다.
부모 입장에서는 엄청난 학비 부담을 줄일 수 있고 자녀는 의사라는 전문직과 장교 경력을 동시에 시작할 수 있다.
물론 세상에 공짜는 없다. 군의관의 길이 편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내가 원하는 도시에서만 근무하겠다고 할 수도 없고, 군의 인사명령에 따라 다른 지역이나 해외로 이동할 가능성도 있다.
전문과 선택이나 레지던시 과정 역시 일반 민간 의대생과는 다른 부분이 있고, 지원받은 만큼 의무복무도 따라온다.
그래서 아무에게나 권할 수 있는 길은 아니다.
하지만 공부에 자신 있고 성실하며, 체력과 책임감도 있고 "내 힘으로 한번 해보겠다"는 헝그리 정신으로 경쟁을 뚫고 붙을 자신이 있다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한국 부모가 자녀를 미국에서 의사로 만들기 위해 반드시 수십만 달러를 준비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부모의 경제력 대신 아이의 실력과 노력, 그리고 군 복무를 선택해서 의사가 되는 길도 미국에는 열려 있다.
덴버에서 군 관계자들과 군 의료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접하다 보면 이런 길이 생각보다 현실적으로 느껴진다.
결국 부모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의대 학비를 전부 대신 내주는 것만이 아니다.
아이가 머리가 좋고 악착같이 해낼 근성이 있다면, 이런 길이 있다는 것을 일찍 알려주는 것도 부모가 해줄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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