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안관까지 투표로 뽑는 미국, 투표용지가 긴 이유 - Concord - 1

며칠 전에 샘플 투표용지를 받아 들고 한참을 들여다봤어요. 주지사, 연방 상원, 하원까지는 예상했는데 아래로 내려갈수록 처음 보는 직함이 줄줄이 나오는 거예요.

셰리프, 카운티 검사, 카운티 재무관, 등기소장, 유언검인 등기관. 와, 이걸 다 내가 뽑는다고? 솔직히 처음엔 인쇄가 잘못된 줄 알았어요.

한국에서는 경찰서장이나 등기소장을 투표로 뽑는다는 상상을 해본 적이 없잖아요. 그래서 오늘은 이 긴 투표용지의 정체를 좀 파헤쳐 보기로 했어요.

뉴햄프셔 주법 RSA 653:1을 찾아보니 답이 바로 나오더라고요. 셰리프, 카운티 검사, 카운티 재무관, 등기소장, 유언검인 등기관은 주 총선 때 카운티 주민이 직접 뽑는다고 적혀 있어요.

임기는 대부분 2년이에요. 2년마다 보안관을 새로 뽑을지 말지 정한다는 뜻이죠.

예외도 하나 있어요. 록킹엄 카운티는 2022년에 통과된 법으로 셰리프, 카운티 검사, 등기소장, 재무관 임기가 4년으로 바뀌었어요.

그럼 셰리프 선거가 뉴햄프셔만의 특이한 풍습이냐 하면 그것도 아니에요. 전미셰리프협회 자료를 보면 46개 주에서 셰리프를 주민 투표로 뽑아요.

뽑지 않는 곳은 네 주뿐이에요. 알래스카와 코네티컷은 아예 셰리프 제도가 없고, 하와이와 로드아일랜드는 임명직이에요.

코네티컷은 2000년에 카운티 셰리프를 없애고 주 마셜 제도로 바꿨대요. 그러니까 미국 대부분 지역에서는 동네 치안 책임자가 곧 선출직 정치인인 셈이에요.

여기서부터 진짜 놀라운 건 주 단위예요. 뉴햄프셔 주 하원 의원이 무려 400명이에요.

두 번째로 큰 펜실베이니아 주 하원이 203명이니까 거의 두 배죠. 주 하원의원 임기도 2년이고 연임 제한도 없어요.

주지사 임기도 2년이에요. 지금 2년 임기 주지사를 뽑는 주는 뉴햄프셔와 버몬트 두 곳밖에 없다고 해요.

거기에 행정위원회라는 것도 있어요. 다섯 명의 행정위원이 각자 지역구에서 뽑히고, 이분들 임기 역시 2년이에요.

올해 11월 3일 총선에서는 이 다섯 자리가 전부 투표용지에 올라가요. 주지사, 행정위원, 주 상원과 하원, 카운티 직책, 연방 선거까지 한 장에 다 들어가니 길어질 수밖에 없죠.

그럼 왜 이렇게까지 많이 뽑을까요? 찾아보니 뿌리가 꽤 깊더라고요.

독립 직후 미국 사람들은 영국 왕과 총독한테 데인 기억이 생생했어요. 권력을 한 사람에게 몰아주면 위험하다는 생각이 강했고, 그래서 임기를 짧게 하고 자주 심판받게 만든 거예요.

버몬트는 건국 후 거의 100년 동안 주지사를 매년 뽑았대요. 1870년에야 헌법을 고쳐 2년 임기로 늘렸다고 하니, 2년도 사실은 늘어난 거였네요.

19세기 들어서는 앤드루 잭슨 시대를 거치며 공직은 엘리트가 나눠 갖는 자리가 아니라 보통 사람이 뽑아야 한다는 생각이 퍼졌어요. 이 흐름 속에서 여러 주가 임명직을 선출직으로 바꿔 나갔고요.

재미있는 건 그 반대도 있다는 점이에요. 뉴햄프셔는 판사를 선거로 뽑지 않고, 주지사가 지명하면 행정위원회가 인준하는 방식이에요.

그러니까 무조건 다 뽑는 게 아니라, 주마다 어디까지 주민이 직접 쥘지 선을 다르게 그은 거예요. 이 차이를 알고 나니 투표용지가 그냥 긴 종이가 아니라 그 주의 역사 지도처럼 보였어요.

뉴햄프셔 주 하원 의석이 400개나 되다 보니 지역구 하나가 대표하는 주민 수도 그만큼 적어요. 동네 마트에서 마주치는 이웃이 주 의원일 수도 있다는 얘기가 괜히 나오는 게 아니더라고요.

물론 단점도 분명해요. 2년마다 선거를 치르면 주지사는 취임하고 1년 반쯤 지나면 다시 선거 준비를 해야 한대요.

유권자 입장에서도 부담이 있어요. 등기소장 후보 공약까지 꼼꼼히 비교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싶거든요.

반대로 지지하는 쪽 논리도 이해가 가요. 셰리프가 동네 사람들 눈치를 봐야 하니 주민 목소리가 바로 닿는다는 거죠.

저는 처음엔 피곤하다고만 생각했는데, 보다 보니 생각이 좀 바뀌었어요. 동네 일을 동네 사람이 정한다는 감각이 이 긴 종이에 고스란히 담겨 있더라고요.

결국 투표용지가 길다는 건 그만큼 주민에게 넘겨준 결정권이 많다는 뜻이에요. 귀찮음과 권한이 한 세트로 묶여 있는 거죠.

그래서 저는 이번엔 아래칸까지 그냥 넘기지 않기로 했어요. 카운티 직책 후보 이름 정도는 미리 검색해 보고 갈 생각이에요.

시민권이 있는 분이라면 주 국무장관실 웹사이트에서 샘플 투표용지를 미리 볼 수 있어요. 투표소에서 처음 보면 저처럼 당황하기 딱 좋거든요.

아직 투표권이 없더라도 한 번쯤 들여다보시길 권해요. 이 나라가 권력을 어떻게 쪼개 놨는지 한 장으로 보여주는 자료로는 이만한 게 없어요.

긴 투표용지, 귀찮지만 은근히 멋진 물건이에요. 이번 탐험은 여기까지, 다음엔 투표소 풍경도 들고 올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