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정부, 인디언 부족 반발에도 62마일 국경장벽 추진 - Phoenix - 1

트럼프 대통령 얘기만 나오면 불법이민, ICE, 국경 문제가 따라붙는데 이번에는 애리조나 인디언 보호구역에 설치한다는 장벽 건설문제가 논란이다.

워싱턴 D.C. 연방법원의 리처드 리언 판사가 토호노 오덤 네이션(Tohono O'odham Nation)이 신청한 국경장벽 건설 중단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한다.

트럼프 행정부가 이 부족의 보호구역을 따라 약 62마일의 장벽을 추진하고 있는데 일단 법원이 합법이라고 본 것이다.

토호노 오덤 보호구역은 애리조나 남부 소노란 사막에 있는데 무려 280만 에이커 규모다. 280만 에이커라면 제주도 전체를 6개 정도 합친 것과 비슷한 엄청난 크기다.

이 넓은 지역에 인디언 부족 구성원도 3만7천 명이 넘는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미국 쪽에만 사는 게 아니라 멕시코에도 수천 명이 살고 있다.

그러니까 이 부족 사람들 입장에서는 조상 때부터 살던 지역 한가운데에 미국과 멕시코 국경이 생긴 셈이다.

지금도 국경 양쪽으로 가족과 친척들이 살고 있다고 한다.

이런 곳에 62마일짜리 장벽을 세운다고 하니 부족 입장에서는 반발할 만하다.

부족 측 주장을 보면 단순히 "우리 땅에 벽 세우지 마라" 정도가 아니다.

장벽 공사를 하면서 자신들이 신성하게 생각하는 산과 종교적인 장소가 훼손될 수 있고, 오랫동안 이어온 종교 의식에도 문제가 생긴다고 주장한다.

특히 미국 쪽 가족과 멕시코 쪽 가족 사이에 거대한 장벽이 생긴다고 생각하면 이 사람들이 왜 민감한지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그런데 법원은 이번에는 연방정부 쪽 논리를 더 받아들였다.

리언 판사는 장벽이 세워진다고 해서 의회의 승인 없이 부족 보호구역의 경계 자체가 바뀐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연방정부가 부족 땅에 불법적으로 침입한다는 주장 역시 현 단계에서는 인정하지 않았다.

판사는 미국 정부가 국경을 통제하고 이민법을 집행하고 공공 안전을 유지해야 할 필요성이 부족 측이 주장하는 피해보다 현재로서는 더 크다고 판단했다.

물론 토호노 오덤 측에서는 바로 반발했다. 다른 법적 대응도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여기서 또 하나 재미있는 역사가 나온다.

1907년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이 미국과 멕시코 국경을 따라 폭 60피트의 땅을 연방정부 관리 구역으로 지정했다.

흔히 루스벨트 보호구역(Roosevelt Reservation)이라고 부르는 곳이다.

중요한 것은 이 조치가 현재의 토호노 오덤 보호구역이 만들어지기 약 10년 전에 있었다는 점이다.

그러니 법적으로 들어가면 머리가 복잡해진다. 인디언 부족의 토지 권리도 있고 연방정부의 국경 관리 권한도 있고 100년도 더 된 대통령의 조치까지 나온다.

미국에서 살다 보면 이런 사건이 참 미국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에서 국경이라고 하면 철책선부터 떠올리게 되는데 미국 남부 국경은 사막도 지나고 개인 땅도 지나고 인디언 보호구역도 지나간다.

지도에 선 하나 긋는 것과 실제 그 자리에 장벽을 세우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다.

이번에는 법원이 트럼프 행정부의 장벽 건설을 막지 않았다. 그렇다고 부족 측 주장이 완전히 끝난 것도 아니다.

결국 62마일짜리 장벽 하나를 놓고 미국의 국경 보안과 100년 넘은 법률, 원주민의 토지 권리와 종교 문제가 한꺼번에 부딪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