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동실 정리만 해도 식비가 줄어드는 진짜 이유 - Boston - 1

지난 주말에 냉동실을 정리하다가 서랍 맨 안쪽에서 언제 넣었는지 기억도 안 나는 냉동만두 봉지를 발견했다.

날짜를 확인해보니 거의 일 년 전에 사놓고 그대로 방치해둔 거였는데, 알고 보니 이런 일이 나만 겪는 게 아니더라.

미국 농무부 자료를 보면 미국 전체 식품 공급량의 30에서 40퍼센트가 그냥 버려지고, 소매와 소비자 단계 손실률만 따져도 31퍼센트에 달한다.

가구당 연간으로 계산하면 먹지도 못하고 버리는 음식값이 평균 1500달러쯤 된다니, 한 달에 100달러 넘는 돈을 그냥 쓰레기통에 넣는 셈이다.

이 정도면 커피값 아낀다고 텀블러 챙겨 다니는 게 다 무색해지는 수준 아닌가 싶다.

그런데 오하이오 주립대 연구팀이 미국 가정 천 곳 넘게 조사한 결과가 꽤 흥미로웠다.

평소에 음식을 얼려서 보관하는 습관이 있는 가정일수록 전체 음식물 쓰레기양이 확실히 적었던 것이다.

다만 냉동실에 넣어두기만 한다고 저절로 해결되는 건 아니라는 게 함정이다.

같은 조사에서 버려지는 냉동식품이 전체 가정 음식물 쓰레기의 6퍼센트를 차지했다.

그중에서도 채소가 22퍼센트, 고기가 20퍼센트, 감자와 곡물류가 각각 15퍼센트씩 나왔다.

결국 얼려놓기만 하고 존재 자체를 잊어버려서 유통기한을 놓치는 경우가 제일 많다는 얘기 아니겠나.

냉동실은 눈에 안 보이면 머릿속에서도 같이 사라지는 대표적인 공간이라, 정리가 안 되어 있으면 안에 뭐가 들었는지부터 파악이 안 된다.

파악이 안 되니까 마트에서 또 똑같은 재료를 사오게 되고, 원래 있던 건 서랍 안쪽으로 계속 밀려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거기다 포장이 헐거우면 냉동실 특유의 서리가 앉으면서 맛과 식감이 확 떨어지는데, 이걸 흔히 냉동상 화상이라고 부른다.

한번 이렇게 되면 먹기가 꺼려지니까 결국 버리게 되고, 애초에 얼려둔 의미가 없어져 버린다.

지퍼백에 넣을 때 공기를 최대한 빼고 밀봉하는 것만으로도 이 서리 앉는 속도를 상당히 늦출 수 있다.

반대로 칸을 나누고 날짜 스티커 하나만 붙여둬도 뭐가 얼마나 있는지 한눈에 들어오고, 먼저 넣은 걸 먼저 꺼내 먹게 된다.

실제로 냉동식품을 사는 미국 가정이 전체의 85퍼센트나 되는데, 그중 55퍼센트는 음식물 낭비를 줄이려는 목적으로 냉동식품을 구매한다고 답했다.

냉동이 낭비를 막아준다는 인식 자체는 이미 널리 퍼져 있는데, 정작 냉동실 내부를 정리하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은 것 같다.

여름에 텃밭에서 방울토마토나 바질을 좀 얻어다 얼려둔 적이 있는데, 정작 정리를 안 해두니 그것도 결국 못 찾고 넘어가더라.

한인마트에서 김치나 나물, 만두 같은 걸 넉넉히 사다가 얼려두는 집도 특히 많은데, 이런 식재료일수록 정리가 안 되어 있으면 더 쉽게 묻혀버린다.

개인적으로는 투명 바구니 몇 개만 사서 육류, 채소, 완제품 이렇게 구역만 나눠도 체감 효과가 꽤 크다고 본다.

여기에 매직으로 넣은 날짜만 적어두면 재고 파악이 훨씬 쉬워지고, 뭘 먼저 요리해야 할지도 자연스럽게 정해진다.

한 달에 한 번 정도 냉동실 안을 쭉 훑어보는 루틴을 만들어두면 유통기한을 넘겨서 버리는 일이 눈에 띄게 줄어든다.

세일할 때 사둔 냉동 채소나 고기가 어디 있는지 몰라서 또 새로 사는 것보다는, 있는 걸 먼저 확인하고 장을 보는 편이 훨씬 이득이다.

바구니값에 라벨 스티커값 다 합쳐도 몇 달러밖에 안 드는데, 이걸로 매달 새어나가던 식비를 확실히 줄일 수 있다면 안 할 이유가 없지 않을까.

나라면 큰맘 먹고 새 정리함을 사기보다는, 집에 있는 밀폐용기랑 지퍼백부터 재활용해서 이번 주말에 바로 시작할 것 같다.

냉동실 정리, 별거 아닌 것 같아도 막상 해보면 왜 이제껏 안 했나 싶을 정도로 효과가 바로 느껴질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