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주 아침 일찍 미시간 유니언 앞을 지나다가 계단 옆 동판 앞에서 걸음을 멈췄습니다. 낙엽이 동판 가장자리를 반쯤 덮고 있었습니다.
학생들은 커피를 들고 그 앞을 바쁘게 지나갑니다. 그 자리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싶었습니다.
1960년 10월 14일 새벽, 대선 유세 중이던 존 F. 케네디 상원의원이 이 계단에 섰습니다. 자정을 훌쩍 넘긴 시각이었고, 흔히 새벽 2시 무렵으로 전해집니다.
예정에 없던 연설이었습니다. 원고도 없었고, 길이는 3분 남짓이었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그 늦은 시간에 학생들이 계단 앞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고 합니다. 군중 규모는 자료마다 조금씩 다르게 적혀 있습니다.
케네디는 학생들에게 물었습니다. 의사가 될 사람, 엔지니어가 될 사람이 개발도상국에 가서 몇 년을 일할 뜻이 있느냐고요.
대단한 정책 발표가 아니라 질문 하나였습니다. 그런데 그 질문이 학생들 사이에서 오래 살아남았습니다.
앤아버 학생들은 서명을 모으고 모임을 꾸려 그 질문에 답했습니다. 정치인의 말이 실제 제도가 되려면 이렇게 누군가 끈질기게 붙잡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1961년 3월 1일, 대통령이 된 케네디는 평화봉사단을 만드는 행정명령에 서명했습니다. 새벽 계단에서 던진 질문이 반년도 안 돼 나라의 기관이 된 셈입니다.
집을 지어본 사람은 압니다. 설계도보다 중요한 것은 첫 삽을 뜨는 날입니다.
그 첫 삽이 이 동네 계단이었다는 사실이 저는 지금도 묘하게 뿌듯합니다. 거창한 기념관이 아니라 학생들이 매일 오르내리는 평범한 계단이라는 점이 더 마음에 듭니다.
이 이야기가 우리에게 각별한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평화봉사단이 한국에도 왔기 때문입니다.
첫 단원들이 한국 땅을 밟은 것은 1966년 9월입니다. 전쟁의 상처가 아직 곳곳에 남아 있던 때였습니다.
비포장 길과 연탄 냄새, 겨울이면 얼어붙는 우물가를 미국 대학을 갓 나온 젊은이들이 어떻게 견뎠을지 짐작이 갑니다. 그 시절을 기억하는 분들이라면 더 생생하게 그려지실 겁니다.
1981년까지 15년 동안 한국에 파견된 미국 젊은이는 회고 자료들에서 2천 명 규모로 적혀 있습니다. 이들은 중학교 교실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보건소에서 일하고, 시골 마을을 돌았습니다.
그중 한 사람이 캐슬린 스티븐스입니다. 1970년대 중반 충남 예산중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쳤고, 한국 이름도 따로 있었습니다.
그 젊은 교사가 30여 년 뒤인 2008년 주한 미국대사로 돌아왔습니다. 2011년까지 대사로 일했고, 부임 후 예산을 다시 찾았습니다.
그는 외교관에게 필요한 자질을 예산에서 배웠다고 말했습니다. 시골 학교 교실이 한 나라의 대사를 길러낸 셈입니다.
한국 사업은 1981년에 문을 닫았습니다. 평화봉사단 전체 예산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면서 본부가 한국 프로그램 종료를 결정한 것입니다.
단원들 가운데는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서둘러 짐을 싼 이들도 있었다고 합니다. 섭섭한 결말이지만, 다르게 보면 한국이 더는 도움을 받는 쪽에 머물지 않게 됐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한국은 1990년부터 정부 차원에서 해외에 봉사단원을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2009년에는 여러 부처의 사업을 하나로 묶어 월드프렌즈코리아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받던 나라가 보내는 나라가 됐습니다. 저는 이것이 그 3분짜리 연설이 남긴 가장 큰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은 그 젊은이들을 잊지 않았습니다. 한국국제교류재단은 2008년부터 옛 단원들을 한국으로 초청하는 재방문 사업을 이어왔고, 800명이 넘는 사람이 다녀갔습니다.
올해 9월 16일에는 서울에서 첫 단원 도착 60주년을 기념하는 만찬이 열렸습니다. 현지 언론은 이 모임이 어쩌면 마지막일 수도 있다고 전했습니다.
그 기사를 읽으며 한참 창밖을 봤습니다. 1966년에 스물 몇 살이던 이들이 이제는 대부분 여든 줄에 들어섰을 테니까요. 세월은 공사판의 콘크리트처럼 소리 없이 굳어 갑니다.
정치적으로 어느 쪽에 서든, 젊은 사람을 낯선 땅에 보내 이웃이 되게 한 일만큼은 좋은 투자였다고 봅니다. 군대나 원조금이 못 하는 일을 사람이 해냈습니다.
요즘은 나라 간 관계를 무역 수지나 방위비 같은 숫자로만 따지는 분위기가 강합니다. 그러나 오래가는 관계는 결국 교실과 보건소에서 만난 얼굴들이 만듭니다.
그 시절 영어 선생님을 기억하는 학생들이 지금은 손주를 둔 어른이 됐습니다. 이민 와서 이 땅에 뿌리내린 우리 가운데에도 그런 기억을 품은 분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혹시 이 동네를 지나실 일이 있으면 유니언 계단 앞에서 잠깐 멈춰 보시기 바랍니다. 동판 하나가 반세기 넘는 인연을 품고 있습니다.
좋은 질문 하나가 바다를 건너 다리가 되기도 합니다. 그날 계단의 새벽 공기를 떠올리며 오늘 하루도 조용히 쌓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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