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사람한테 "미국 이민" 하면 취업이민, 가족초청, 투자이민 정도가 떠오른다.
뭔가 서류 뭉치와 목돈 깨지는 변호사비와 몇 년의 기다림이 콤보로 사람 피를 말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미국에는 훨씬 심플한 루트가 하나 더 있으니 바로 미국에 관광비자로 들어와서 망명(asylum)을 신청하는 것이다.
신박한 편법처럼 들리지만 전혀 새롭지 않다. 이민법 다루는 이 바닥에서는 꽤 오래된 클래식이다.
이번에 트럼프 행정부가 2016년부터 2026년 사이에 발급된 B1·B2 비자로 입국한 뒤 망명을 신청한 외국인들의 비자를 대규모로 취소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대상이 최대 20만 명. 실제로 집행되면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단일 비자 취소가 된다. 역시 트럼프 대통령은 스케일 하나는 인정해줘야 한다.
미국 망명법은 인종, 종교, 국적, 정치적 견해, 특정 사회집단 구성원이라는 이유로 박해받았거나 앞으로 박해받을 "충분히 근거 있는 두려움(well-founded fear)"이 있어야 한다고 규정한다.그 외의 사유는 아무리 딱해도, 법적으로는 해당 사항 없음이다.
대표적인 게 중국이다. 미국에 온 뒤 공산당이나 시진핑 체제를 공개 비판했다거나, 중국에서 금지된 파룬궁 활동을 했다가 귀국하면 체포·구금·박해를 당할 위험이 있다고 주장하는 케이스들이 있다. 실제로 미국 이민 법원에서 파룬궁 관련 망명 사건은 여러 번 다뤄졌다.
중국 정부가 파룬궁 신도로 판단한 여성이 체포와 구금, 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한 사건도 있었고, 미국에 와서 파룬궁 활동을 시작한 뒤 귀국하면 처벌받는다며 신청한 사례도 있었다.
최근에는 신장 지역 인권 실태를 촬영해 외부에 공개한 시민기자 Guan Heng의 케이스가 있었다. 그는 미국에서 영상을 공개하고 망명을 신청했고 국무부는 중국이 해외의 반체제 인사까지 보복하거나 괴롭힐 수 있다는 점을 그의 사건과 관련해 언급했다. 이건 누가 봐도 제도가 원래 상정한 그림이다.
아프리카 사례도 마찬가지다. 여기서 "무슬림 국가에서 왔으니 망명하겠지" 같은 게으른 도식을 들이대면 안 된다.
같은 이슬람권 안에서도 종파와 민족이 다르다는 이유로 박해받는다. 알제리 출신 남성이 이바디 무슬림이자 모자비트족이라는 이유로 폭행과 차별을 당하고 집까지 불탄 뒤 미국에 와서 망명을 승인받은 사례가 있다. 소말리아 출신 신청자가 알샤바브의 모집을 거부하고 정부 측 인사들과 어울렸다는 이유로 살해 협박을 받았다며 보호를 요청한 사건도 법원에서 다뤄졌다.
그러니까 "미국 와서 시진핑 욕하면 영주권 준다"는 절대 아니다.
미 정부와 이민법원은 그 활동이 진짜인지, 귀국 시 실제 박해 가능성이 있는지, 본국 정부가 그 사람의 존재를 알기나 하는지를 종합적으로 따진다.
트위터 팔로워 40명짜리 반체제 계정으로 베이징 욕하며 나는 중국에 돌아가면 죽는다고 주장하면, 판사도 그 정도 산수는 한다.
그런데 시스템은 그 판단을 할 능력이 있나여기서부터가 냉정하게 볼 대목이다.
정치나 종교 때문에 귀국하면 감옥에 가거나 목숨이 위험한 사람은 미국이 보호한다.
자유주의 국가의 자부심 같은 거다. 문제는 취지가 아니라 구현(implementation)이다.
그런데 검증 비용이 신청 비용보다 훨씬 비싼 시스템은 반드시 남용된다. 이건 도덕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다.
스팸 메일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 무료 체험 계정이 무한 생성되는 이유 전부 같은 원리다.
신청은 종이 한 장, 검증은 판사 한 명의 몇 시간. 이 비대칭이 방치되면 결과는 정해져 있다.
미국 망명 제도가 딱 그 구조다.
신청서를 넣는 순간 심사 대기열에 들어가고, 대기열은 몇 년 단위로 밀려 있고, 그 사이 일정 기간이 지나면 노동허가(EAD)를 받아 합법적으로 일할 수 있다.
최종 판단이 몇 년 뒤에 나오는 시스템에서, 신청 행위 자체가 이미 상당한 가치를 갖는다.
행정부 주장은 명확하다. 미 대사관에서 "디즈니랜드 구경하고 2주 뒤 돌아오겠습니다"라고 해서 관광비자를 받은 사람이 입국 직후 망명을 신청하면, 애초에 관광 목적이 맞았느냐는 의문이 생긴다는 것.크리스토퍼 랜도 국무부 부장관도 허위 망명 신청을 거론하며 망명이 이민법을 우회하는 'loophole'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솔직히 이 지적 자체는 반박하기 어렵다. 비이민 비자는 "돌아올 의사(nonimmigrant intent)"를 전제로 발급된다.
입국 3주 만에 망명 신청서가 들어왔다면, 그 전제가 처음부터 거짓이었을 가능성을 의심하는 건 음모론이 아니라 기본적인 추론이다.
나도 미국 비자 인터뷰에서 그 질문을 받아본 사람이라 이 부분은 감정이 좀 섞인다.
현재 망명관련 제도는 나도 문제가 있다고 본다.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 조건이 아니라 범주로 자른다. "2016~2026년 B1·B2 입국 + 망명 신청"이라는 필터에는 진짜와 가짜가 같이 걸린다. 위에 적은 신장 시민기자도, 알제리의 모자비트족도 대부분 관광비자로 들어왔다. 정치범이 본국 정부에 "저 망명 갑니다" 하고 난민 비자를 신청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원래 그렇게 오는 거다.
둘째, 사람이 미국에 온 뒤 상황이 바뀔 수 있다. 관광객으로 왔는데 그 사이 본국에서 쿠데타가 나거나, 미국에서 시작한 활동이 본국에 알려져 위험해지는 경우가 실제로 있다. 현행법도 일정 요건 아래 체류 신분과 무관하게 망명 신청을 허용한다.
셋째, 그리고 이게 제일 중요한데 지금 이 조치는 병목을 건드리지 않는다. 대기열이 몇 년씩 밀려 있고 그 사이 노동허가가 나오는 구조를 그대로 두면, 20만 명을 취소해도 다음 20만 명이 같은 문 앞에 줄을 선다. 근본 원인을 놔두고 로그를 지우는 셈이다.
그 원칙에는 동의한다. 그리고 이 원칙을 가장 강하게 지켜야 할 사람은 반이민론자가 아니라, 이 제도가 정말 필요한 진짜 난민들이다.
가짜가 늘어날수록 진짜가 의심받기 때문이다.
그런데 제도를 지키는 방법이 "20만 명 일괄 취소" 하나뿐이라면, 그건 정책이라기보다 정책 실패의 증상에 가깝다.
진짜 해법은 이민판사 증원, 심사 기간 단축, 명백히 근거 없는 신청의 조기 종결, 노동허가와 심사 속도의 재설계.
헤드라인은 안 나오지만 실제로 작동하는 것들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던진 질문인 "진짜 박해받는 사람과 제도를 이용하려는 사람을 구분할 수 있느냐".
지금 내놓은 답은 그 질문에 대한 답이 아니라, 답을 못 하겠다는 고백에 가깝다고 본다.


댄싱퀸 홍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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