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회사 동료가 승진 소식을 전해왔다. 직함이 '매니저'에서 '시니어 매니저'로 바뀌었다고 좋아하길래 축하한다고 했는데, 정작 월급 명세서에는 변화가 하나도 없었다.
이런 경우를 업계에서는 '드라이 프로모션(dry promotion)'이라고 부른다. 직함과 책임은 올라가는데 급여 인상은 따라오지 않는, 말 그대로 이름만 승진인 셈이다.
이런 흐름은 2023년 리서치업체 가트너가 그해의 주요 인사 트렌드로 꼽은 '조용한 채용(quiet hiring)'과도 맞닿아 있다. 새로 사람을 뽑는 대신 기존 직원의 역할과 책임을 재배치해서 필요한 역량을 메우는 전략인데, 드라이 프로모션은 이 전략을 실행하는 가장 손쉬운 카드 중 하나로 쓰인다.
글로벌 컨설팅업체 콘 페리 조사에 따르면 2023년 기준 기업의 37퍼센트가 이런 드라이 프로모션을 실시했다. 2020년대 초반 32퍼센트였던 것과 비교하면 꾸준히 늘어난 수치다.
보상 컨설팅 회사 펄 메이어의 조사 결과도 비슷한 흐름을 보여준다. 자금 여유가 없을 때 급여 대신 직함으로 직원을 보상한다고 답한 기업 비율이 2018년 8퍼센트에서 2023년 13퍼센트로 올라갔다.
같은 조사에서 기업 규모별 차이도 드러났다. 매출 3억에서 10억 달러 사이 기업은 2018년 14퍼센트에서 2023년 40퍼센트로, 매출 3억 달러 미만 기업은 10퍼센트에서 35퍼센트로 직함을 보상 수단으로 쓰는 비율이 급격히 늘었다.
세대별로 보면 온도차가 꽤 크다. 같은 조사에서 지난 1년간 드라이 프로모션을 받아본 비율이 Z세대는 33퍼센트, 밀레니얼은 18퍼센트였던 반면 X세대는 7퍼센트, 베이비부머는 3퍼센트에 그쳤다.
이제 막 커리어를 쌓아가는 젊은 직원일수록 이 카드에 더 자주 노출된다는 뜻이다. 승진이라는 단어 자체에 설레는 시기라서 회사 입장에서는 협상하기 편한 상대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실제로 이런 승진은 책임 범위만 크게 넓어지는 경우가 많다. 관리하는 팀원 수가 두 배로 늘거나 새 프로젝트를 통째로 맡게 됐는데, 정작 그 일을 해낼 예산이나 추가 인력은 그대로인 식이다.
고용주 쪽 이야기도 들어볼 필요가 있다. 채용 플랫폼 레주메템플레이츠가 2025년 10월 기업 관리자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에서는 23퍼센트가 승진시킨 직원 중 일부에게 급여 인상 없이 직함만 바꿔준 적이 있다고 인정했다.
경기가 예전만큼 뜨겁지 않고 이직도 활발하지 않다 보니 회사 입장에서는 굳이 돈을 더 쓰면서까지 사람을 붙잡을 이유가 줄어든 셈이다. 예산은 빠듯하고 채용 시장은 식었으니, 직함이라는 값싼 카드를 먼저 꺼내는 것도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다.
직원들의 체감은 훨씬 냉정하다. 이력서 작성 서비스 마이퍼펙트레주메가 2025년 8월 미국 직장인 1000명을 조사한 결과 92퍼센트가 회사들이 직함을 통해 성장하고 있다는 착각을 심어준다고 답했고, 91퍼센트는 그 직함이 사실상 임금 인상을 피하려는 수단이라고 봤다.
같은 조사에서 39퍼센트는 실제로 급여 인상 없이 상위 직함을 받은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15퍼센트는 그럴듯한 직함을 받는 대신 더 낮은 연봉을 받아들인 적이 있다고 했으니, 직함이 협상 카드로 쓰이는 일이 낯설지 않다.
물론 직함이 완전히 쓸모없는 카드는 아니다. 링크드인 프로필과 이력서에 상위 직함을 올려두면 다른 회사 채용 담당자 눈에 더 잘 띄고, 다음 이직 자리에서 몸값을 부르는 근거로도 쓸 수 있다.
미국 노동법에는 승진하면 급여를 올려줘야 한다는 연방 규정이 따로 없다. 회사와 별도의 계약서나 노조 협약이 있지 않은 한, 직함을 바꾸면서 얼마를 더 줄지는 전적으로 회사 재량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직함만 오른 승진 제안을 받았을 때는 감사 인사보다 질문이 먼저여야 한다. 언제, 얼마나 급여를 조정할 계획인지 구체적인 시점을 문서로 남겨달라고 요청하는 정도는 무리한 부탁이 아니다.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권하는 문장도 있다. '이 역할은 맡고 싶지만 급여 인상 부분도 같이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정도로 직접 되묻는 식이다. 승진 제안을 거절하지 않으면서도 보상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꺼내는 화법이라 부담이 덜하다.
급여 인상이 정말 어렵다는 답이 돌아온다면 다른 조건을 꺼내보는 것도 방법이다. 유급휴가를 며칠 더 얹어달라거나 재택 근무 요일을 늘려달라거나, 회사가 비용을 대는 교육이나 자격증 프로그램에 등록시켜 달라는 요청 정도는 협상 테이블에 충분히 올릴 만하다.
급여 조정이 당장 어렵다는 답을 들었다면 최소한 재검토 시점을 못박아 두는 게 좋다. 3개월 뒤든 다음 예산 시즌이든 날짜를 구체적으로 확인해두면, 그 시점에 다시 대화를 꺼낼 근거가 생긴다.
막연히 '다음에 잘해줄게'라는 말만 믿고 넘어가면 몇 년 뒤에도 직함과 월급 사이의 간격은 그대로일 가능성이 높다. 오히려 새로 얻은 직함은 이력서에서는 쓸모가 있으니, 협상이 막히면 밖에서 내 몸값을 다시 재보는 것도 방법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드라이 프로모션이라는 말 자체가 좀 얄궂다고 생각한다. 액자만 근사하게 바꿔주고 안에 걸 그림은 그대로 두는 셈인데, 그 안을 채우라고 요구하는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당연한 권리다.

goldencloudwalker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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