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기록 3,156파운드, 호박 하나에 1년 거는 미국 사람들 - Indianapolis - 1

솔직히 말하자. 처음 그 뉴스를 봤을 때 오타인 줄 알았다. 호박 한 덩이가 3,156파운드라니, 동네 마트에서 파는 할로윈 호박을 생각하면 말이 안 되는 숫자다.

그런데 사실이다. 지난 10월 10일 로드아일랜드 워런의 한 농장에서 열린 계량 대회에서 론 월리스라는 재배자의 호박이 그 무게를 찍었다.

대회 전에 그레이트 펌킨 커먼웰스(GPC) 심사원들이 호박에 금이 갔는지, 규정에 맞는지부터 확인하고 저울에 올렸다고 한다. 기네스 세계기록은 며칠 뒤 이걸 세계 최고 기록으로 소개했다.

더 웃긴 건 그 전 기록이 고작 일주일 전에 세워졌다는 거다. 10월 3일 영국 햄프셔의 이언 페이턴이 2,856파운드짜리 호박으로 자기 기록을 스스로 갈아치웠는데, 그게 일주일 만에 깨졌다.

기네스 쪽도 이 부문 기록이 이렇게 빨리 주인을 바꾸는 건 거의 없는 일이라고 했다. 호박 업계에도 군비경쟁이 있다는 얘기다.

월리스라는 이름이 낯설지 않은 사람도 있을 거다. 2012년 매사추세츠 톱스필드 페어에서 처음으로 2,000파운드를 넘긴 호박, 정확히는 2,009파운드짜리를 키운 사람이 바로 그다.

그때 대회 측이 1톤을 처음 넘기는 사람에게 1만 달러 보너스를 걸어놨는데, 그걸 가져간 게 월리스였다. 그리고 14년 뒤에 3,000파운드 벽까지 넘겼다.

본인 말로는 올해가 처음으로 온실에서 키운 시즌이었다고 한다. 35년 가까이 호박을 키웠다는 사람이 아직도 방법을 바꿔본다는 게 오히려 인상적이다.

그럼 서부는 어땠나. 캘리포니아 하프문베이에서 매년 10월 열리는 세계 챔피언십 호박 계량 대회가 이 바닥의 슈퍼볼로 통한다.

올해는 10월 12일에 열렸고, 미네소타 애노카의 원예 교사 트래비스 기엔저가 2,389파운드짜리 호박으로 우승했다. 호박 이름이 록키다. 이 사람은 이걸로 다섯 번째 우승이다.

기엔저는 2023년 같은 대회에서 2,749파운드로 당시 세계 기록을 세웠고, 2024년에도 2,471파운드로 정상에 올랐다.

작년 2025년에는 기엔저가 재배 도중 호박이 갈라져서 아예 출전을 못 했다. 그 틈에 산타로사의 엔지니어 브랜든 도슨이 2,346파운드로 우승을 가져갔다.

도슨은 2024년에 고작 6파운드 차이로 준우승을 했던 사람이다. 1년을 기다려서 설욕한 셈인데, 이 정도면 스포츠 드라마다.

상금은 우승 호박 기준으로 파운드당 9달러다. 도슨이 작년에 받은 돈이 2만 1,114달러였다.

숫자만 보면 꽤 큰돈 같지만, 이게 현실이야. 비료값, 물값, 온실, 몇 달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는 노동을 계산하면 남는 장사라고 보긴 어렵다.

기엔저는 2023년 기록을 세웠을 때 하루에 최대 12번까지 물을 줬다고 했다. 휴가나 출장 같은 건 그 해엔 없다고 봐야 한다.

이 대회의 뿌리도 재미있다. 하프문베이 대회는 1974년에 하프문베이와 오하이오 서클빌이 누가 더 큰 호박을 키우나 붙어본 친선 내기에서 시작됐다.

동네 자존심 싸움이 50년 넘게 이어지면서 국제 규정과 공인 심사, 기네스까지 엮인 판이 된 거다. 미국이란 나라가 원래 이렇다. 뭐든 일단 크게 만들고, 그다음엔 순위를 매긴다.

지금 이 판을 관리하는 GPC는 전 세계에 공인 계량 장소를 두고 규정을 통일해 운영한다. 기록이 공식 인정을 받으려면 이 사람들 기준을 통과해야 한다.

대부분의 재배자들이 쓰는 품종은 애틀랜틱 자이언트다. 캐나다 노바스코샤의 하워드 딜이 개량한 품종으로, 거대 호박 경쟁의 출발점이 여기서 나왔다고 보면 된다.

그런데 씨앗만 좋다고 되는 게 아니다. 좋은 씨앗은 재배자들 사이에서 족보처럼 관리되고, 어떤 호박의 씨였는지가 다음 해 성적을 좌우한다고들 한다.

결국 이건 씨앗, 흙, 날씨, 그리고 사람의 고집이 합쳐진 결과다. 어느 하나만 빠져도 저울 앞에 설 수 없다.

나는 이 대목에서 묘하게 공감이 갔다. 이민 와서 사는 우리도 비슷하지 않나. 처음엔 다들 비웃는 일에 몇 년씩 매달리고, 결과는 저울에 올려봐야 안다.

한국에서 이런 얘기를 하면 아마 "그 시간에 다른 걸 하지" 소리부터 들을 거다. 효율로만 따지면 맞는 말이다.

하지만 여기 사람들은 그 비효율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농사꾼, 교사, 엔지니어가 주말마다 호박밭에 붙어 사는 걸 아무도 이상하게 보지 않는다.

가을이면 동네마다 크고 작은 호박 행사가 열린다. 3,000파운드짜리를 볼 일은 없겠지만, 동네 페어에서 지게차로 호박을 저울에 올리는 장면 한 번쯤은 직접 보는 걸 권한다.

세상이 시끄럽고 뉴스는 매일 우울하다. 그 와중에 누군가는 호박 하나에 1년을 걸고, 일주일 만에 세계 기록이 두 번 바뀐다.

쓸데없어 보이는 일에 끝까지 진지한 사람들, 나는 그런 미국이 정치판 미국보다 훨씬 낫다고 본다. 내년 10월에도 저울 숫자를 챙겨 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