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앵커리지에서 살면서 제일 기다려지는 행사를 꼽으라면 저는 단연 퍼 론디(Fur Rendezvous)와 아이디타로드입니다.
이 두 행사가 알래스카의 긴 겨울을 버티게 해주는 든든한 축입니다.
퍼 론디는 매년 2월에 앵커리지 도심에서 열리는 전통 겨울 축제입니다.
1935년에 처음 시작되었으니 역사가 아주 유서 깊은 행사입니다.
축제 기간이 되면 화려한 퍼레이드가 펼쳐지고 곳곳에 멋진 눈 조각들이 들어섭니다.
박진감 넘치는 개썰매 경기도 열리고 밤하늘을 수놓는 불꽃놀이와 각종 야외 경연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앵커리지 시민들이 길고 어두운 겨울 중에 한껏 밖으로 나와 즐기는 활력소 같은 축제입니다.
이어폰으로 좋아하는 한국 노래를 틀어놓고 이 이국적인 눈 축제를 즐기는거이 바로 앵커리지 겨울 생활이 주는 특별한 묘미입니다.

퍼 론디가 끝나면 곧바로 3월 초에 아이디타로드(Iditarod) 경주가 이어집니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고 거대한 개썰매 경주입니다.
앵커리지에서 출발해 거친 알래스카 내륙을 거쳐 노스웨스트 끝에 있는 놈(Nome)까지 달리는 레이스입니다.
그 거리가 무려 약 1,600킬로미터에 달합니다.
본격적인 경주에 앞서 열리는 출발 세리머니는 앵커리지 다운타운 4번가(4th Avenue)에서 진행됩니다.
이날 앵커리지의 분위기는 정말 장관입니다. 전 세계에서 모인 관람객과 주민들로 거리가 가득 찹니다.
튼튼한 썰매 개 수십 마리와 머셔(썰매꾼)들이 팀을 이루어 흰 눈이 깔린 도심을 힘차게 질주하는 모습은 엄청난 에너지를 줍니다.
살면서 한 번쯤은 꼭 직접 봐야 하는 감동적인 장면입니다.
저는 이런 지역 축제와 행사들이 살아있는 커뮤니티를 만드는 원동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춥고 외딴 도시처럼 보이지만 이런 공공 행사에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모입니다.
함께 추위를 이겨내고 웃고 즐기는 그 경험이 끈끈한 공동체 의식을 만들어내기 때문입니다.
조용하고 정적인 도시인 줄 알았던 앵커리지가 의외로 얼마나 활기차고 매력적인 곳인지 이 겨울 축제들이 똑똑히 보여줍니다.
긴 겨울이 마냥 지루하지만은 않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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