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계산대에 파스타 면 두 봉지랑 토마토 캔을 올렸더니, 계산원이 스캔을 멈추고 물었습니다. "오늘 저녁 뭐 해 드세요?"
뒤에 줄이 세 명이나 서 있는데 말이죠. 나는 반사적으로 "아, 그냥 파스타요" 했고, 그 사람은 곧장 마늘을 몇 쪽 넣느냐로 대화를 이어갔어요.
계산이 끝날 때쯤 우리는 앤초비를 팬에 녹여야 하느냐 마느냐로 짧은 토론까지 마친 상태였습니다. 장 보러 갔다가 레시피 상담을 받고 나올 줄은 몰랐네요.
처음엔 그냥 그분 성격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마트를 바꿔도, 동네를 옮겨도 비슷한 질문이 계속 날아옵니다.
"주말 계획 있어요?" "오늘 날씨 미쳤죠?" "이 시리얼 맛있어요?"
한국 마트에서 계산원이 내 장바구니를 보고 저녁 메뉴를 물었다면, 나는 아마 카트를 버리고 도망쳤을 겁니다.
그래서 이 수다의 정체가 뭔지 좀 찾아봤어요.
먼저 규모부터. 미국 노동통계국 자료 기준으로 계산원은 2025년에 310만 6300명입니다.
중위 임금은 시간당 15.81달러, 연 3만 2880달러로 나와 있어요.
그리고 이 직종은 2035년까지 20만 600개, 비율로는 6퍼센트가 줄어들 것으로 전망됩니다. 셀프 계산대가 늘어나는 만큼 수다의 총량도 구조적으로 깎여 나가는 셈이죠.
그런데 왜 아직 남아 있는 계산원들은 그렇게 말을 걸까요.
2014년 브리티시컬럼비아대의 길리언 샌드스트롬과 엘리자베스 던이 커피숍에서 실험을 하나 했습니다.
손님을 두 그룹으로 나눠, 한쪽은 바리스타와 눈을 맞추고 웃으며 짧게 대화하게 했고 다른 쪽은 최대한 효율적으로 주문만 하게 했어요.
결과는 대화한 쪽의 기분이 더 좋았고, 연구진은 그 차이를 소속감으로 봤습니다. 논문 제목이 "효율은 과대평가된 것인가"였는데, 제목부터 시비를 거는 게 마음에 들더군요.
같은 해 시카고대의 니컬러스 에플리와 줄리아나 슈뢰더는 통근자 800명 이상을 데리고 비슷한 걸 해봤습니다.
기차나 버스에서 낯선 사람에게 말을 걸게 했더니, 조용히 혼자 온 사람들보다 통근 경험이 더 긍정적이었어요.
진짜 재밌는 건 실험 전 예측입니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혼자 있는 쪽이 더 편하고 좋을 거라고 답했거든요.
우리가 조용한 계산대를 원한다고 믿는 것과, 실제로 조용한 계산대에서 기분이 좋은 것은 별개라는 얘기입니다.
이게 개인 취향 문제만은 아니에요.
2023년 미국 의무총감은 외로움과 고립을 공중보건 문제로 규정한 권고문을 발표했습니다.
사회적 연결이 부족하면 조기 사망 위험이 26퍼센트 높아지고, 이는 하루 담배 15개비를 피우는 것에 비견된다는 내용이었죠. 담배 열다섯 개비라니, 숫자를 처음 봤을 때 좀 놀랐어요.
재밌게도 이 습관은 나라마다 온도차가 큽니다. 낯선 사람과의 가벼운 잡담을 두고 유럽 쪽에서는 사생활 침해로 읽는 시선이 더 강하다는 지적이 자주 나오죠.
반대로 미국 쪽 사람들은 그 침묵을 차갑다고 느끼고요. 같은 30초짜리 대화가 어디서는 예의고 어디서는 무례가 되는 겁니다.
이걸 아예 매장 설계에 반영한 나라도 있습니다. 네덜란드 슈퍼마켓 체인 점보는 2019년에 이른바 수다 계산대를 처음 열었어요.
일부러 천천히 계산하면서 손님과 말동무가 되어주는 줄인데, 이후 200곳으로 늘었습니다.
네덜란드 통계청 기준으로 75세 이상 세 명 중 한 명이 중간 이상의 외로움을 느낀다는 배경이 있었다고 해요.
물론 미국 마트의 수다를 전부 따뜻한 마음으로 해석하면 그것도 좀 순진한 겁니다.
상당수 체인은 인사와 눈맞춤, 마무리 멘트를 아예 매뉴얼로 못박아 두고 평가에도 반영합니다.
그러니까 어떤 날의 그 친절은 감정노동이고, 시급 15달러 남짓에 딸려 오는 업무 항목이기도 하죠.
나는 양쪽을 다 인정하는 편이에요. 진심에서 나온 말 걸기와 회사가 시킨 말 걸기가 같은 문장으로 나올 수 있고, 듣는 사람 입장에서 구분이 안 될 때도 많습니다.
그래서 나름의 타협점을 정했어요.
기분이 괜찮은 날엔 셀프 계산대를 지나쳐서 사람 있는 줄에 섭니다. 급하거나 말이 하기 싫은 날엔 기계 앞에 서고요.
둘 다 정상이고, 둘 중 뭘 고르든 눈치 볼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하나는 분명해요. 앤초비를 녹여야 한다고 알려준 그 계산원 덕분에 그날 파스타는 확실히 더 맛있었습니다.
장바구니에 면이 있으면 말을 거는 사람이 꼭 나타난다는 게, 이 동네에서 배운 가장 황당하고 쓸모 있는 법칙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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