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주변 지인들 부모님 은퇴 소식을 들을 때마다 신기한 패턴이 보인다.
다들 시골로 내려갈 줄 알았는데, 정작 가는 곳은 대학교가 있는 소도시인 경우가 많더라.
은퇴 하면 조용한 시골 마을에서 텃밭 가꾸며 사는 그림, 아직도 많이들 떠올린다. 근데 요즘 미국 은퇴자들 실제 행보는 완전히 다르다.
실제로 은퇴 후 이사지로 대학 도시를 고르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기사들이 계속 나온다. 포브스도 올해 은퇴하기 좋은 곳 목록에 대학 도시들을 대거 올렸다.
구체적으로 이름을 보면 조지아주 애선스, 캔자스주 로렌스, 켄터키주 렉싱턴 같은 곳들이 자주 등장한다.
재밌게도 내가 사는 아이오와주의 아이오와시티도 이 목록에 이름을 올렸더라. 남 얘기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 하필 대학 도시일까. 이유를 하나씩 뜯어보면 꽤 논리적이다.
첫번째는 의료 접근성이다. 대학 도시엔 의외로 대형 대학병원이 딸려 있는 경우가 많다.
인구는 적은데 전국구 수준 의료 시스템을 갖춘 소도시들이 실제로 존재한다. 나이 들수록 병원이 가까운지가 제일 중요한 조건이 되는 걸 생각하면, 이건 당연한 선택이다.
두번째는 평생교육이다. 오셔 재단이라는 곳이 전국 대학 캠퍼스에 평생학습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있는데, 그 수가 125개나 된다.
미국 50개주와 워싱턴DC 전부에 최소 하나씩은 있다고 한다. 등록 회원 수만 16만명이 넘는다니, 규모가 꽤 크다.
이 숫자를 보고 살짝 놀랐다. 그냥 취미반 수준이 아니라는 뜻이니까.
본캠퍼스뿐 아니라 위성 캠퍼스와 파트너 기관을 통해 전국 276개 도시와 마을에서도 강의가 열린다고 한다. 대학 근처가 아니어도 혜택을 볼 수 있는 구조인 셈이다.
앤아버 지역 대학의 평생학습 프로그램 강의 목록은 100페이지가 넘는다고 한다. 핵물리학 강의부터 유럽 근현대사 수업까지 있다니, 은퇴자 대상 커리큘럼치고는 스케일이 남다르다.
그냥 강의만 듣고 끝나는 게 아니다. 캠퍼스 안에서 젊은 학생들과 부대끼면서 에너지를 얻는다는 후기가 많다.
플로리다 게인즈빌에 있는 오크해먹이라는 은퇴 커뮤니티는 아예 플로리다대학교 옆 136에이커 부지에 자리잡고 있다.
이곳 입주민들은 학교 수업을 청강 형태로 무료로 들을 수 있다고 한다. 등록금 걱정 없이 평생 학생 노릇을 할 수 있는 셈이다.
매사추세츠 뉴턴에 있는 라셀 빌리지는 한 술 더 뜬다. 입주민마다 연간 450시간의 학습이나 운동 프로그램 참여를 아예 의무로 정해놨다.
은퇴했다고 손 놓고 쉬는 게 아니라 계속 배우고 움직이라는 취지인데, 이런 조건을 걸어도 입주를 원하는 사람이 꾸준하다는 게 신기했다.
세번째는 이동 편의성이다. 대학 도시는 애초에 차 없는 학생들이 걸어다니게 설계된 곳이 많다.
나이 들어 운전을 그만둬도 생활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이건 시골에서는 기대하기 힘든 조건이다.
네번째는 문화와 외식 인프라다. 소도시 물가로 대도시급 공연, 전시, 맛집을 누릴 수 있다는 게 핵심이다.
반대로 시골은 병원 하나 가려 해도 차로 한참을 나가야 하는 경우가 많다. 고립되기 쉬운 구조라는 게 문제다.
이런 흐름이 자리잡으면서 아예 대학과 손잡은 은퇴자 전용 주거단지도 생겼다. 업계에서는 이걸 대학 기반 은퇴 커뮤니티라고 부른다.
전국에 이런 대학 연계 은퇴 커뮤니티가 85곳 넘게 있다고 한다. 다만 정식으로 인정받는 곳은 4다스 정도뿐이고, 이 개념 자체는 2004년에 만들어진 용어다.
벌써 20년 넘게 다듬어진 모델인 셈이다. 우연히 생긴 유행이 아니라는 얘기다.
데이터 기반으로 판단하는 성격이라 그런지, 이런 숫자들을 보면 확신이 선다. 대학 도시는 대체로 분위기도 열려 있고 세대가 섞여 사는 편이다.
고립보다 연결을 원하는 은퇴자라면 잘 맞는 환경이다. 게다가 대부분 공항이나 큰 도시 접근성도 나쁘지 않다.
자녀나 손주가 오가기에도 시골보다 훨씬 수월하다는 뜻이다.
물론 단점도 있다. 인기 있는 대학 도시는 집값이 꽤 올랐고, 홈경기 있는 주말엔 교통이 마비 수준이다.
집값이 오르는 데도 나름 이유가 있다. 대학이라는 안정적인 고용 기반이 지역 경제를 받쳐주다 보니 경기가 흔들려도 수요가 잘 안 꺼진다는 분석이 많다.
최근엔 재택근무를 하는 젊은 층까지 대학 도시로 몰리면서 매물 경쟁이 더 치열해졌다는 얘기도 나온다. 은퇴자와 재택근무자가 같은 동네를 놓고 겹치는 모양새다.
자동차 업계에 있다 보니 이런 부분이 유독 눈에 들어온다. 홈경기 시즌 주차 수요랑 평소 주중 도로 흐름이 아예 다른 도시라는 게 데이터로도 보인다.
그래서 은퇴를 준비하는 입장이라면 홈경기 주말과 평범한 평일, 이 두 타이밍에 한 번씩 미리 가보라고 권하고 싶다. 분위기 차이가 생각보다 크다.
그래도 전체적으로 보면 답은 이미 나와 있다. 나라면 조용한 시골보다 사람도 있고 병원도 가깝고 강의도 들을 수 있는 대학 도시를 고를 것 같다.

vintago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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