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사스 산안토니오에서 여름을 지내다보면 날씨와의 밀당을 매일 같이 겪는다는 생각이 든다.
일단 여름은 무조건 덥다. 8월부터 9월중순까지 낮기온이 100도 넘는 날도 흔하고 햇볕에 세워둔 차는 후라이팬처럼 달궈진다.
그런데 이 무더위 속에서 이상하게도 "비"라는 존재는 오락가락...
올 땐 퍼붓고 안 올 땐 몇 주씩 소식이 없다. 이게 바로 산안토니오 여름 날씨의 진짜 모습이다.
산안토니오에서 몇 해를 보내며 느낀 건, 여긴 단순히 "건조한 곳"이라고만 하기엔 좀 애매하다는 거다.
산안토니오도 분명 텍사스지만, 해안 도시인 휴스턴과는 다르게 완전한 내륙 기후다.
대충 차로 3시간 정도 동쪽으로 달리면 습하고 눅눅한 휴스턴이 나오는데, 거긴 정말 비가 자주 온다.
허리케인이 몰려오거나 열대성 저기압이 지나갈 때면 우산 가지고는 어림도 없다.
하지만 산안토니오는 다르다. 이쪽은 대서양보단 멕시코만의 영향도 덜 받고, 해풍보단 열풍이 익숙한 지역이라 날씨도 제멋대로다.
가장 혼란스러운 건,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어도 정작 구름만 끼다 마는 경우가 많다는 거다.
또는 아예 한 달 가까이 강수량 '제로'인 시기도 있다. 그러다가 한 번 쏟아지면 도로가 금세 물바다가 되고, 배수 시스템이 버티질 못해서 길거리가 강처럼 변한다. 특히 도심 외곽 쪽은 물 빠지는 데 오래 걸려서, 차 몰다가 갑자기 잠수함 되는 경험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그렇게 자주 있는 일은 아니다. 진짜 문제는 오히려 비가 안 오는 날들이다.
여름 한복판인 7월~8월엔 몇 주씩 가뭄이 이어질 때도 많고, 잔디밭은 노랗게 마르기 시작하고 도심 공원 나무들도 시름시름 앓는 모습이 역력하다.
그래도 산안토니오의 하늘은 예쁘다. 맑은 날엔 청명한 푸른 하늘에 구름 한 점 없이 탁 트인 풍경이 펼쳐진다.
하지만 그만큼 자외선도 강하다. 그래서 여름철에는 외출할 땐 항상 썬크림과 물병이 필수다.
반팔, 반바지에 샌들은 기본이고, 모자 안 쓰고 밖에 오래 있다가는 금세 두통이 오거나 어지럼증을 느낄 수 있다.
산안토니오 날씨가 가진 이 '극과 극'의 매력은 처음엔 당황스럽지만, 시간이 지나면 은근히 적응된다.
비가 안 올 땐 그 나름대로 계획이 수월하고, 올 땐 자연이 얼마나 소중한지도 깨닫게 된다.
집 앞 잔디밭에 스프링클러 설치는 필수다. 여름철 몇 주 동안 비가 안 올 땐, 그냥 뿌리는 수밖에 없으니까.
산안토니오는 분명히 텍사스답게 덥고, 건조하고, 때로는 아주 극단적으로 비도 오지만, 그 모든 날씨의 조합이 이 도시만의 매력을 만든다.
휴스턴처럼 습하지도 않고, 엘패소처럼 극도로 건조하지도 않은, 딱 중간 어딘가에서 균형을 잡은 그런 도시.
그래서일까. 해가 지고 조금씩 시원한 바람이 불어올 때면, 이곳이 참 살기 괜찮은 도시라는 생각이 든다.
여름날의 산안토니오는 항상 덥지만 살다보면 왠지 정든다.
수영장이 딸린 집이라면 더욱 정이 들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