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들은 왜 나이 들어서 새로운 취미에 뛰어들까 - Denver - 1

동네 커뮤니티 센터에 붙은 성인 강좌 목록을 본 적이 있는데, 도자기, 수채화, 스윙댄스, 목공까지 종류가 생각보다 다양하더라.

강좌 신청자 명단을 슬쩍 봤더니 20대보다 60대 이상이 훨씬 많았다.

은퇴한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 분들이 처음 잡아보는 도구 앞에서 어색하게 웃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동네 헬스장에도 요가나 피클볼을 새로 시작한 이웃 어르신들이 부쩍 늘었다는 얘기를 자주 듣는다.

이런 강좌들이 주말 낮 시간대에 자주 열리는 것도 은퇴자들의 생활 패턴에 맞춘 결과라고 생각한다.

왜 이 나이가 되어서야 새로운 걸 배우려고 하는지 궁금해서 자료를 좀 찾아봤다.

은퇴는 단순히 일을 그만두는 게 아니라 매일 반복하던 역할과 정체성을 한꺼번에 잃는 사건이라고 한다.

예전 노년학 이론에서는 나이가 들면 사회 활동에서 서서히 물러나는 게 자연스럽다고 봤다.

그런데 요즘 통용되는 활동 이론은 정반대다. 활동과 역할을 계속 유지해야 심리적으로 안정된다는 쪽으로 무게가 옮겨갔다.

일만 손에서 놓으면 하루의 구조 자체가 사라지니까, 그 빈자리를 새로운 활동으로 채우려는 움직임이 자연스럽게 나온다는 것이다.

이게 그냥 이론으로만 그치는 얘기가 아니라 실제 데이터로도 뒷받침된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2023년 네이처 메디슨에 실린 연구를 보면 근거가 꽤 탄탄하다.

미국의 건강은퇴연구를 포함해 16개국, 9만 3263명을 추적한 결과 취미를 가진 사람일수록 우울 증상이 적고 스스로 평가하는 건강 상태도 좋았다.

같은 연구에서 나라별 취미 보유율을 비교했더니 스페인은 51퍼센트, 덴마크는 96퍼센트로 나라마다 편차가 상당히 컸다.

4년에서 8년에 걸쳐 관찰했더니 취미를 시작한 사람들은 이후 우울감이 줄고 행복감과 삶의 만족도가 올라가는 방향으로 변화했다.

단순한 상관관계가 아니라 인과관계에 가깝다는 뜻이라 데이터로서 신뢰가 간다.

미국 성인 전체로 봐도 취미를 가진 비율은 계속 올라가는 추세다.

2025년 조사에서는 미국 성인의 89퍼센트가 취미가 있다고 답했는데, 이건 2023년의 88퍼센트보다 소폭 오른 수치다.

미국에서 유독 이런 현상이 자연스러운 이유는 나이와 상관없이 다시 시작하는 것 자체를 이상하게 보지 않는 문화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커뮤니티 칼리지나 시니어 센터에는 은퇴자를 위한 강좌가 상시로 열려 있고, 새로 배우러 온 60대, 70대를 특별 취급하지 않는다.

혼자 하는 게 아니라 같은 반 사람들과 매주 얼굴을 보는 것 자체가 사회적 연결망을 새로 만드는 효과도 있는 것 같다.

심지어 취미로 시작한 목공이나 베이킹을 작은 부업으로 키워서 세컨드 커리어로 만드는 경우도 주변에 종종 보인다.

한국에서는 이 나이에 뭘 새로 배운다고 하면 주변에서 먼저 놀라는 경우가 많은데, 여기서는 그런 시선 자체가 별로 없더라.

심리학에서는 이런 태도를 포지티브 에이징 플렉서빌리티라고 부르는데, 나이가 들어도 자신이 계속 성장할 수 있다고 믿는 사고방식을 말한다.

결국 이건 누가 시켜서 되는 게 아니라 본인이 하루 일과를 스스로 다시 설계하겠다는 결정에서 시작되는 것 같다.

정부 프로그램이나 누구의 지원이 없어도, 개인이 새로운 목표 하나를 세우는 것만으로 삶의 방향이 꽤 크게 바뀐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이런 걸 보면 결국 노후 대비라는 게 돈 문제만은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매일 뭘 하며 시간을 보낼지 스스로 정해두는 습관 자체가 하나의 자산이라는 계산이 선다.

이 자료들을 보고 나니, 취미를 뒤늦게 시작하는 걸 그저 심심해서 하는 일로 치부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도 지금부터 뭔가 배워두면 나중에 그 습관이 그대로 자산이 될 것 같다.

새로 시작하기에 늦은 나이라는 건 적어도 데이터로 보면 별로 근거가 없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