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하지 않아도 돼, 미국 부모들이 아이에게 하는 말 - Houston - 1

동네 리틀리그 야구장에 가보면 요즘 자주 보이는 장면이 있다. 마지막 타석에서 삼진을 당한 아이가 고개를 푹 숙이고 더그아웃으로 걸어오면, 부모가 자리에서 일어나 아이 눈높이까지 몸을 낮춘다. 그리고 하는 말은 대개 비슷하다.

"괜찮아, 완벽할 필요 없어."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는 그냥 흔한 위로인 줄 알았다. 그런데 여러 번 반복해서 듣다 보니 이게 그 순간만을 위한 말이 아니라 요즘 육아 방식 자체를 관통하는 문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 이런 말이 부모들 입에서 이렇게 자주 나오게 됐을까 궁금해서 찾아봤더니, 배경에는 실제로 심리학 연구가 꽤 두툼하게 쌓여 있었다.

사실 이 개념 자체가 아주 새로운 건 아니다. 영국의 소아과 의사이자 정신분석가였던 도널드 위니컷은 1950년대에 이미 '충분히 좋은 엄마'라는 개념을 내놓았다. 완벽한 부모가 아니라 때로는 서투르게, 적당히 반응해주는 부모가 오히려 아이의 정서 발달에 더 도움이 된다는 주장이었다.

이 흐름을 뒷받침하는 연구는 또 있다. 1998년 컬럼비아대 클라우디아 뮐러와 스탠퍼드대 캐럴 드웩 교수가 초등학교 5학년 아이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실험인데, 문제를 푼 뒤 한쪽 아이들에게는 "똑똑하구나"라고 말해주고 다른 쪽에는 "열심히 했구나"라고 말해줬다. 그랬더니 똑똑하다는 말을 들은 아이들은 다음 문제를 고를 때 쉬운 쪽만 골랐고, 노력을 칭찬받은 아이들은 오히려 더 어려운 문제에 도전하는 쪽을 골랐다.

실패를 겪은 뒤의 모습도 갈렸다. 노력을 칭찬받았던 아이들은 문제를 더 오래 붙들고 있었고 그 과정 자체를 즐겼던 반면, 똑똑하다는 말을 들었던 아이들은 금세 흥미를 잃고 자기 능력을 탓하는 쪽으로 기울었다.

그 이후로 미국 부모 교육 자료에서는 결과보다 과정을 짚어주는 말투를 권하는 경우가 부쩍 늘었다. "참 잘했어" 대신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해봤네"라고 바꿔 말하라는 식인데,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과 결이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커런 교수 연구팀이 1989년부터 2016년까지 대학생들의 완벽주의 성향을 추적한 결과를 보면 숫자가 꽤 인상적이다. 이 기간 동안 자기 자신에게 높은 기준을 요구하는 자기지향적 완벽주의는 10퍼센트, 남들이 나에게 완벽함을 기대한다고 느끼는 사회적으로 요구된 완벽주의는 33퍼센트, 남에게 완벽함을 요구하는 타인지향적 완벽주의는 16퍼센트 늘었다.

올해 나온 후속 연구는 범위를 훨씬 더 넓혔다. 1989년부터 2024년까지 미국, 영국, 캐나다 대학생 8만 2천 명 이상을 대상으로 한 307건의 연구를 다시 분석했는데, 특히 사회적으로 요구된 완벽주의가 2000년대 초반부터 눈에 띄게 가팔라졌다는 결과가 나왔다.

미국심리학회 자료에는 어린이와 청소년의 25에서 30퍼센트가 완벽주의 성향을 보인다는 내용도 있었다. 생각보다 훨씬 흔한 이야기라 나도 좀 놀랐다.

흥미로운 건 완벽주의가 늘어난 원인을 소득 격차에서 찾는 분석도 있다는 점이다. 경제 성장이 둔화되고 소득 불평등이 커질수록 젊은 세대의 완벽주의 수치도 함께 올라간다는 결과였다. 결국 성적표 한 장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 분위기와 맞닿아 있는 셈이다.

그러니까 요즘 부모들이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아"라는 말을 자꾸 하는 건 그냥 착한 말을 골라 하는 게 아니라, 이 흐름을 어느 정도 알고 의식적으로 반대 방향을 향해 밀어보려는 시도에 가까워 보인다.

이 말이 유독 자주 나오는 자리도 눈에 띈다. 성적표를 펼쳐놓고 마주 앉았을 때보다 오히려 운동장이나 하이킹 트레일처럼 몸을 움직이는 자리에서 훨씬 자연스럽게 튀어나온다.

아이가 트레일을 완주하지 못하고 중간에 주저앉아도, 부모는 정상까지 못 간 걸 탓하지 않고 여기까지 걸어온 다리를 먼저 칭찬한다. 등산은 원래 완주가 목적이 아니라 걸음 하나하나가 목적이라는 걸 몸으로 가르쳐주는 셈이다.

요즘은 부모가 아이 앞에서 자기 실수를 굳이 감추지 않는 모습도 자주 보인다. 트레일 중간에 길을 잘못 들었을 때 당황하지 않고 지도를 다시 펼치는 모습, 운동 클래스에서 균형을 못 잡고 휘청거리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식이다. 완벽하지 않은 모습을 먼저 보여줘야 아이도 그걸 자연스러운 일로 받아들인다는 계산이 깔려 있는 것 같다.

물론 이 말에 다들 동의하는 건 아니다. 너무 자주 "괜찮아"만 반복하면 아이가 노력 자체를 덜 하게 되는 거 아니냐는 걱정도 분명 있고, 반대로 어릴 때부터 실수를 견디는 힘을 길러줘야 나중에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는 의견도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후자 쪽에 마음이 좀 더 간다. 완벽한 결과 하나보다 다시 시도할 수 있는 마음이 훨씬 오래 남는다고 믿는 편이라서.

그래서인지 다음번에 또 삼진당한 아이 옆에 쪼그려 앉은 부모를 보게 되면, 이번엔 그냥 흐뭇하게 지켜보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