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유튜브나 커뮤니티 게시판만 봐도 육십 다 돼서 이혼했다는 사연이 꽤 자주 보이더라. 예전 같으면 그 나이에 갈라선다는 게 낯설게 느껴졌을 텐데, 요즘은 반응이 오히려 담담하다.
이런 현상을 미국에서는 그레이 디보스라고 부르는데, 50대 이후 이혼이 눈에 띄게 늘어난 흐름을 따로 묶어서 부르는 말이다.
실제 수치를 찾아보니 진짜 놀랍긴 하더라. 숫자로 보니까 이게 그냥 느낌만은 아니라는 게 확실해진다.
1990년만 해도 미국에서 이혼하는 사람 중 50세 이상 비중은 8%에 불과했다.
그런데 최근에는 이 비중이 40%에 육박한다. 다섯 명 중 두 명꼴로 늘어난 셈이니 결코 작은 변화가 아니다.
나이대별 이혼율로 봐도 흐름은 비슷하다. 50세 이상 기혼 여성 1000명당 이혼 건수가 1990년에는 3.9명이었는데 2008년에는 11.0명까지 올라갔다.
재밌는 건 같은 시기 미국 전체 이혼율은 오히려 낮아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젊은 부부들은 갈라서는 비율이 줄어드는데 나이 든 부부들만 반대로 늘고 있다는 얘기다.
65세 이상으로 좁혀 보면 흐름이 더 뚜렷해진다. 1990년 이후로 이 연령대 이혼율은 세 배 가까이 뛰었다고 한다.
그럼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 이유를 하나씩 짚어보면 생각보다 수긍이 간다.
가장 많이 꼽히는 이유는 자녀 독립, 그러니까 빈 둥지 시기다. 아이들 키우는 동안 어떻게든 버텨온 부부들이 막상 둘만 남으면 서로 할 얘기가 없다는 걸 그제야 깨닫는다고 한다.
육아라는 공동의 목표가 사라지고 나니 결혼을 붙잡아주던 접착제도 같이 사라진 셈이다. 그동안 안 보이던 빈틈이 갑자기 눈에 들어오는 거다.
두 번째 이유는 여성들의 경제적 자립이다. 예전에는 남편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어서 참고 사는 여성들이 많았지만 요즘은 다르다.
몇십 년씩 커리어를 쌓고 자기 명의의 은퇴자금까지 갖춘 여성이라면 불행한 결혼을 굳이 더 끌고 갈 이유가 없어진다.
실제로 그레이 디보스는 절반을 훌쩍 넘는 비율로 여성이 먼저 요구한다는 조사 결과가 여러 건 있다.
이 대목에서는 솔직히 좀 통쾌하기도 하다. 선택지가 있다는 것 자체가 예전과는 다른 지점이니까.
세 번째 이유는 수명이 길어졌다는 점이다. 예전보다 훨씬 오래, 그리고 건강하게 사는 시대가 됐다는 뜻이다.
60대라도 앞으로 살아갈 날이 20년, 30년씩 남은 시대니까 그 시간을 불행하게 채우고 싶지 않다는 계산이 선다.
예전 기준으로는 이 나이에 무슨 소리를 들었을 결정이 지금은 오히려 합리적인 선택으로 받아들여진다.
네 번째로는 이혼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 예전보다 많이 누그러진 것도 한몫한다.
오래전부터 마음은 멀어졌는데 체면 때문에, 혹은 자녀 때문에 그냥 한 지붕 아래 룸메이트처럼 지내온 부부도 적지 않다고 한다.
다섯 번째 이유로는 은퇴 이후 생활 방식 차이도 있다. 한쪽은 여행을 다니고 싶어 하는데 다른 한쪽은 집에서 조용히 지내고 싶어 하다 보면 매일 부딪히는 일이 늘어난다고 한다. 직장 다닐 때는 몰랐던 성격 차이가 은퇴 후 하루 종일 붙어 있으면 그제야 도드라지는 셈이다.
건강 문제도 무시할 수 없는 변수다. 배우자를 오래 간병하다 지쳐서 관계가 무너지는 경우도 있고, 은퇴 후 찾아온 우울감이 관계에 영향을 주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한인 커뮤니티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가끔 듣게 되는데, 자녀들 다 키워놓고 나서야 각자의 길을 가기로 했다는 어르신들 사연이 은근히 있다.
다만 이게 무조건 좋기만 한 결정은 아니라는 점도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장점만 보고 뛰어들기엔 현실적으로 걸리는 문제들이 꽤 있다.
은퇴자금을 반으로 나누고 살던 집까지 정리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노후 재정 계획에는 분명히 타격이 온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이혼을 결정하기 전에 재정 상담부터 받아보라고 조언한다.
재정 얘기가 나온 김에 하나 더 짚자면, 결혼 생활을 10년 이상 유지한 뒤 이혼했을 경우 재혼하지 않는 한 전 배우자의 기록을 기준으로 최대 절반까지 배우자 급여를 받을 수 있다는 사회보장연금 규정이 있다.
이 급여는 전 배우자가 실제로 받는 금액을 줄이는 것도 아니라서, 이혼을 고민 중이라면 미리 알아두면 손해 볼 일은 없다.
실제로 결혼 생활 25년이 넘어서 이혼하는 경우가 전체 이혼의 5분의 1을 넘는다고 한다.
그만큼 오래 참아온 만큼 결단도 신중하게 내리는 경우가 많다는 뜻이다. 홧김에 저지르는 결정이라기보다는 오랜 고민 끝에 나온 결론에 가깝다는 얘기다.
개인적으로는 이 흐름을 무조건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참는 게 미덕이던 시절을 지나 이제는 남은 인생을 어떻게 채울지 스스로 결정하려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신호로 보이니까.
다만 그 결정이 순간의 감정이 아니라 충분한 고민 끝에 나온 것이길 바랄 뿐이다. 그래야 후회도 덜하고, 그다음 챕터도 더 단단하게 시작할 수 있을 테니까.
결혼이든 이혼이든 결국 중요한 건 남은 시간을 후회 없이 사는 것 아닐까.

오늘도버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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