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는 재수 없는 날에도 웃을까? 액땜의 과학 - Pasadena - 1

살다 보면 꼭 그런 날이 있습니다.

아침에 커피를 쏟고, 주차장에서 못봤던 문짝 문콕을 발견합니다.

그럴 때 한국 사람들은 유별나게도 이런 말을 합니다.

"오늘 액땜했네."

재미있는 건 나이들고 경험도 많은 사람들이 은근히 액땜을 믿는다는 사실입니다.

"지금 작은일로 재수가 없으니 좀 괜찮아 지겠지."

생각해 보면 액땜이라는 개념은 상당히 한국적입니다.

작은 불행 하나가 더 큰 불행을 대신 가져갔다는 해석이니까요.

예를 들어 자동차 타이어가 펑크 났습니다.

미국 사람은 보통 이렇게 말합니다.

"운이 없었네."

그런데 한국 사람은 다릅니다.

"큰 사고 안 난 걸 다행으로 생각하자."

같은 상황인데 결론이 완전히 다릅니다.

한국인은 불행을 손실이 아니라 투자로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백불 잃었으니 천불넘게 돈 날릴 일이 사라졌다는 식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혹시 액땜은 양자역학과 비슷한 거 아닐까?

여기서 물리학자들이 화내기 전에 먼저 말씀드립니다.

진짜 물리학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냥 50대 아저씨의 망상입니다.

양자역학에는 여러 가능성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개념이 있습니다.

고양이가 살아 있을 수도 있고 죽어 있을 수도 있다는 그 유명한 이야기 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인생도 비슷한 것 아닐까요?

아침에 차를 긁은 세계와 긁지 않은 세계가 동시에 존재하는 겁니다.

그런데 내가 차를 긁은 세계로 들어왔으니 더 큰 사고가 발생한 세계는 사라진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죠.

바로 이 지점에서 한국인의 액땜 이론이 탄생합니다.

"그래, 문짝만 조금 긁혔으니 됐다."

이 말은 사실 엄청난 정신 승리 같지만 의외로 삶에 도움이 됩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원래 후회를 제조하는 동물이기 때문입니다.

주식을 팔면 더 오르고,

안 팔면 떨어지고,

집을 사면 가격이 내리고,

안 사면 가격이 오릅니다.

우리 뇌는 늘 최악의 비교 대상을 찾아냅니다.

그런데 액땜이라는 개념은 그 흐름을 끊어버립니다.

손해를 봤는데도 마음이 편해집니다.

한국인만 가진 아주 독특한 정신승리 알고리듬인 셈입니다.

생각해 보면 미국 생활 자체가 액땜의 연속입니다.

이민 초기에는 중고차가 퍼지고,

아파트 디파짓 왕창 떼이고,

영어 때문에 창피도 당하고,

크레딧 점수 때문에 좌절도 합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나면 대부분 이렇게 말합니다.

"그때 고생한 게 다 도움이 됐어."

그 시절에는 재난이었는데 나중에는 액땜으로 재해석됩니다.

인생이라는 게 원래 그런 모양입니다.

젊을 때는 불행이고, 나이 들면 추억이 됩니다.

제가 사는 파사데나에도 오래된 나무들이 많습니다.

겨울 폭풍이 지나가면 굵은 나뭇가지가 부러져 떨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나무는 그 뒤에 더 튼튼해집니다.

가지 하나를 잃었지만 나무 전체는 살아남은 것입니다.

어쩌면 액땜이라는 것도 비슷한 개념인지 모릅니다.

작은 상처 하나가 삶 전체를 지켜주는 역할 말입니다.

물론 과학적으로 증명된 건 없습니다.

문짝에 스크래치 났다고 복권이 당첨되는 것도 아니고, 스마트폰을 떨어뜨렸다고 건강검진 결과가 좋아지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사람은 계산기처럼 사는 존재가 아닙니다.

의미를 만들며 사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한국 아저씨들은 말합니다.

"액땜했네."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 말 한마디를 하고 나면 마음이 조금 편해집니다.

저를 포함한 50대 한국 아저씨들은 이미 알고 있습니다.

살다 보면 좋은 날도 오고 나쁜 날도 옵니다.

그리고 가끔은 작은 불행 하나쯤 웃어넘길 줄 알아야 다음 날도 버틸 수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저는 이렇게 결론 내립니다.

액땜은 미신이 아닙니다.

한국인의 정신 건강을 지켜주는 양자역학적 심리치료 논리라고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