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가스 월마트에서 만난 '비닐봉지'가 내게 준 문화 충격 - Los Angeles - 1

엘에이 살고 있지만 요즘 캘리포니아에 살다 보면 짜증 나는게 너무 많아졌습니다.

타주보다 비싼 아파트 렌트, 생활비, 이란 전쟁나고 오른 미친 개스값, 원래 비싼 판매세 뭐 다 좋습니다.

누구 말처럼 그래도 우리가 사는 캘리포니아는 날씨가 좋다잖아요?

그래서 불편해도 비싸도 참고 살다가, 다른 주 가서 "아니, 이게 된다고?" 싶어지는 순간 현타 오는건 어쩔 수 없더군요.

얼마전 라스베이거스 놀러 갔다가 Walmart 계산대에서 직원이 비닐봉지에 물건들 담아주는거 보다가 든 생각.

"아니, 이 편한 걸 왜 캘리포니아에서는 금지해서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거지?"

캘리포니아 산다는 이유로 에코백 들고다녀야 하고, 잊고 가면 마켓 종이봉투 10센트 주고 언제까지 계속 사야되나 싶은겁니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 '에코(Eco)'라는 이름의 덫

LA를 포함한 캘리포니아는 사실상 비닐봉지 금지 정책을 오랜 시간 강력하게 밀어붙였습니다.

2014년 통과되어 우여곡절 끝에 시행된 '주 하원의원 법안 270(SB 270)'이 그 주인공이죠.

처음에는 명분이 참 그럴듯했습니다. 바다 오염을 줄이고, 해양 생물을 보호하며, 플라스틱 폐기물을 줄이자는 취지였으니 반대하기 어려웠습니다.

바람에 날려 가로수에 걸리고 하수구를 막는 얇은 비닐봉지(LDPE)를 퇴출하겠다는 정부의 호기로운 외침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언제나 '현실'에 있습니다.

실제 생활에서 주민들이 마주한 것은 드라마틱하게 깨끗해진 환경이 아니었습니다.

장을 보러 갈 때마다 돈을 내고 사야 하는 '재사용 봉투'라는 이름의 애매하게 두꺼운 플라스틱 백(HDPE)이었습니다.

차에 장바구니 두는 걸 깜빡할 때마다 돈을 주고 또 사야 했고, 결과적으로 집에는 처치 곤란한 두꺼운 플라스틱 백만 산더미처럼 쌓이기 시작했습니다.

정말 플라스틱 사용량이 줄었을까요? 대다수 주민의 체감상 대답은 "글쎄요"입니다.

베가스 월마트에서 만난 '비닐봉지'가 내게 준 문화 충격 - Los Angeles - 2

캘리포니아 정부의 고질병: '쇼맨십'과 '현실 무감각'

더 씁쓸한 건 캘리포니아 주정부 특유의 태도입니다.

정책을 만들 때 불편함보다는, "우리가 얼마나 진보적이고 환경을 앞장서서 생각하는가"라는 상징성을 보여주는 데 더 집중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특히 LA처럼 차를 타고 대량으로 장을 보는 문화에서는 이 정책이 정말 비현실적 입니다.

뉴욕처럼 걸어 다니며 소량으로 장을 보는 도시 구조가 아닙니다. 코스트코나 대형 마트에서 일주일 치 식료품을 한 번에 무겁게 사 오는 게 일상이죠.

그런데 마트에서 주는 종이봉투는 무겁거나 냉동식품의 물기가 조금만 닿아도 생각보다 쉽게 터집니다.

세제나 음료수 몇 개만 넣어도 손잡이가 늘어나고 불안해지죠. 주차장 트렁크 앞에서 종이봉투가 찢어져 계란이 깨지고 우유통 떨어질때 분노는 경험해 본 사람만 압니다.

결국 재사용 백을 따로 주문해 트렁크에 수십 개씩 넣고 다니는 수고로움을 떠안았습니다.

이것이 진정 환경을 위한 것일까요, 아니면 서민들의 삶을 쓸데없이 복잡하게 만든 것일까요?

재활용이 된다고?"

여기에 더해, 우리가 마트에서 돈을 주고 사는 그 두꺼운 플라스틱 백(HDPE)의 진실을 알면 더 허탈해집니다.

마트의 짭짤한 수입원: 마트는 이 봉투를 개당 약 5센트에 들여와 소비자에게 10센트 이상에 팝니다. 이건 정부에 내는 세금이 아니라 마트의 순수익으로 들어갑니다. 환경 보호라는 명목하에 소비자의 돈으로 마트 배를 불려주는 꼴입니다.

재활용 불가능한 '재활용 봉투': 봉투 바닥을 보면 화살표 모양의 재활용 로고가 선명합니다. 하지만 정작 캘리포니아 내의 일반 시 재활용 센터(Curbside recycling bin)에 이 봉투를 넣으면 기계에 끼여 수동으로 제거해야 하는 골칫덩이가 됩니다.

갈 곳 없는 플라스틱: 연방환경청(EPA)과 주 정부 기관(CalRecycle)의 답변에 따르면, 캘리포니아 내에서 이 두꺼운 플라스틱 백을 대규모로 재활용하는 시설은 사실상 전무합니다. 결국 이 봉투들 역시 그대로 쓰레기 매립지로 향해 수백 년 동안 썩지 않는 쓰레기가 됩니다.

여기에 코로나19 팬데믹 시절 위생 문제로 60일간 금지령이 유예되면서, 집에서 장바구니를 챙겨오는 문화마저 상당 부분 사라졌습니다.

이제 사람들은 마트에 갈 때마다 '재활용도 안 되는 비싼 두꺼운 플라스틱 봉투'를 매번 새로 사고 있는 게 차가운 현실입니다.

반면 네바다나 텍사스 같은 다른 주에 가보면 분위기가 완전히 다릅니다. 물론 그곳이라고 환경 논란이 없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적어도 주민들에게 "우리가 너희의 사소한 생활 방식과 도덕성까지 관리하겠다"라며 피로감을 주지는 않습니다.

필요한 만큼 비닐봉지를 쓰고, 삶의 편리함을 유지합니다.

현재 캘리포니아 정부를 보면 칭찬받을 일(물가 안정, 치안 확보, 노숙자 문제 해결)은 지독하게 못 하면서, 주민들을 규제하는 일에는 굉장히 자신 있어 보입니다.

높은 세금과 무거운 물가 속에서 정작 주민들이 매일 체감하는 삶의 질은 떨어지는데, 정책을 발표할 때는 늘 자신들이 세상을 바꿀 것처럼 거창하게 말하죠.

환경 보호 자체를 반대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문제는 방향성과 현실감입니다. 주민들의 삶이 실제로 편해지고 도시가 깨끗해진다는 '체감'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캘리포니아는 자꾸만 "불편함을 감수하는 것이 선진 시민의 의무"라는 식으로 본질을 흐립니다.

라스베이거스 월마트에서 평범한 비닐봉지 하나를 받아 들고 속이 시원했던 이유.

별거 아닌 이 작은 편안함이, 지금의 캘리포니아에서는 왜 이토록 누리기 힘든 '사치'처럼 느껴져야 하는 걸까요?

내 지갑에서 나간 10센트와 트렁크에서 찢어진 종이봉투를 보며, 진정한 '환경 정책'이 무엇인지 다시금 묻게 되는 요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