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뉴욕의 어두운 자화상, Taxi Driver - New York - 1

1976년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이 연출하고 로버트 드니로가 주연을 맡은 영화 택시 드라이버(Taxi Driver)는 명작소리를 듣는 영화입니다.

베트남 전쟁 참전 이후 지독한 전쟁 트라우마(PTSD)에 시달리는 청년 트래비스 비클(로버트 드니로 분)의 시선을 통해, 영화는 당시 범죄와 빈곤, 도덕적 해이로 신음하던 뉴욕의 어두운 밤거리를 적나라하게 해부합니다.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이라는 화려한 타이틀을 뒤로하고 이 영화가 오늘날까지 위대한 평가를 받는 이유는, 1970년대라는 특정 시대가 가졌던 거대한 사회적 징후들을 거칠고 사실적인 스크린 위로 완벽하게 길어 올렸기 때문입니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1970년대 중반의 미국, 특히 뉴욕은 그야말로 '혼돈의 도가니 어찌보면 거의 지옥도 환경'에 가까웠습니다.

오늘날 전 세계 관광객들이 환호하는 화려하고 세련된 타임스 스퀘어나 맨해튼 44번가, 8번 애비뉴 일대는 당시 성인 오락 업소와 마약상, 매춘부들이 가득했던 황폐한 슬럼가였습니다.

실제로 영화는 별도의 세트장 없이 당시 위험천만했던 뉴욕의 실제 거리에서 촬영되어, 시대의 공기를 타임캡슐처럼 고스란히 담아냈습니다.

이 시기 미국은 대외적으로 베트남 전쟁의 패전이라는 사상 초유의 굴욕과 상실감을 겪었고, 대내적으로는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인해 국가 권력에 대한 신뢰가 바닥에 떨어진 상태였습니다. 도시 재정은 파산 직전에 이르렀고, 치안은 완전히 붕괴되었습니다.

주인공 트래비스는 이처럼 방향성을 잃고 표류하는 미국 사회의 파편 그 자체입니다. 국가를 위해 싸웠으나 돌아온 사회에서 철저히 소외된 채, 밤마다 택시를 몰며 도시의 오물들을 목격하는 그의 시선은 극도로 냉소적이고 위험한 영웅주의로 변질해 갑니다.

거울을 보며 권총을 겨누고 뱉는 명대사 "Are you talkin' to me? (지금 나한테 말하는 거야?)"는 단순한 혼잣말이 아니라, 자신을 외면한 냉혹한 세상을 향한 분노의 일침이기도 했습니다.

1970년대 뉴욕의 어두운 자화상, Taxi Driver - New York - 2

그렇다면 <택시 드라이버>가 상영되던 1976년, 한국의 상황은 어땠을까요?

1970년대 중후반의 한국은 미국의 '도시 쇠퇴'와는 정반대로, '압축 성장과 격동의 근대화'라는 폭풍 한가운데에 있었습니다. 박정희 정권의 유신 체제 아래에서 강력한 경제 개발이 추진되던 시기였으며, 농촌을 떠나 서울로 몰려든 수많은 젊은이가 공장과 건설 현장, 그리고 도시의 하층 노동자로 편입되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두 나라의 외형적 상황(미국의 쇠퇴와 한국의 급성장)은 달랐지만, 그 안에서 신음하던 '개인의 내면'은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당시 한국 사회 역시 베트남 전쟁과 깊은 연관이 있었습니다. 수많은 한국군이 베트남에 파병되었고, 돌아온 참전 군인들은 미국 군인들과 마찬가지로 고엽제 후유증과 정신적 상처를 안은 채 사회의 냉대 속에서 살아아가야 했습니다. 또한, 급격한 도시화의 그늘 속에서 서울의 청계천이나 가리봉동 일대는 영화 속 뉴욕의 뒷골목처럼 빈곤과 범죄, 소외로 얼룩져 있었습니다.

미국의 트래비스가 사회적 고립 속에서 폭력적인 '괴물'로 변해갔듯, 1970년대 한국의 청년들 역시 통행금지와 두발 단속, 사상 검열이라는 숨 막히는 억압 속에서 깊은 환멸을 느꼈습니다.

택시 드라이버는 연출, 연기, 음악의 삼박자가 완벽하게 맞물린 작품입니다.

당시 만 13세에 불과했던 조디 포스터는 거리의 어린 소녀 '아이리스' 역을 맡아 소름 끼치는 천재적 연기를 선보였고, 영화 음악의 거장 버나드 허먼(Bernard Herrmann)이 남긴 음울하면서도 긴장감 넘치는 재즈 풍의 사운드트랙은 뉴욕의 연기 자욱한 밤거리 분위기를 완벽하게 증폭시켰습니다.

치안 붕괴와 재정 위기의 상징이었던 1970년대 뉴욕은 이후 수십 년에 걸친 도시 정화 사업을 통해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안전하고 화려한 관광 도시로 탈바꿈했습니다.

지금 뉴욕에 거주하는 한인들이나 여행자들이 이 영화를 본다면, 현재 눈앞에 펼쳐진 타임스 스퀘어의 화려함 뒤에 숨겨진 어둡고 비장했던 과거모습의 이질감에 스산한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뉴욕 3부작(<좋은 친구들>, <비열한 거리>) 중 가장 날카로운 문제작인 <택시 드라이버>.

1970년대 미국과 한국, 두 나라의 뜨거웠던 이면을 비교하며 감상한다면 이 고전 명작이 주는 울림은 더욱 깊고 묵직하게 다가올 것입니다.

현재 넷플릭스와 아마존 프라임 등에서 감상할 수 있으니, 영화가 선사하는 짙은 여운에 푹 빠져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