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타란티노 영화 좋아한다고 말하는 사람들 중 의외로 The Hateful Eight (2015)을 끝까지 제대로 본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다들 펄프 픽션이나 킬빌 이야기만 하지, 막상 헤이트풀 에잇 얘기 꺼내면 "조금 길지 않았나?" "그 영화는 못들어봤는데?" 하면서 넘어갑니다.
사실 이 영화는 별로 재미 위주 영화가 아닙니다. 타란티노가 관객 비위를 맞춰주려는 생각 자체를 포기하고 만든 작품에 가깝습니다.
3시간 가까운 러닝타임 동안 눈보라 속 오두막 안에서 인간들이 서로를 의심하고 떠보고 거짓말하고 죽이는 과정을 집요하게 끌고 갑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긴 시간이 지나고 나면 머릿속에 남는 건 총격전보다도 차가운 공기와 눅눅한 긴장감입니다.
배경은 미국 남북전쟁 직후의 와이오밍으로 설정되어 있지만, 실제 촬영은 콜로라도의 텔루라이드 주변 산악 지대에서 진행됐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예쁜 설경" 정도가 아닙니다. 타란티노는 원래 인간 혐오를 꽤 스타일리시하게 포장하는 감독인데, 이 영화에서는 그걸 눈 덮인 산맥으로 더 냉혹하게 밀어붙입니다.
텔루라이드의 겨울 풍경은 아름답다기보다 잔인합니다. 끝없이 하얀데 따뜻함은 전혀 없습니다.
눈 덮인 산을 보면 보통 해방감이나 낭만 같은 걸 떠올리는데, 헤이트풀 에잇의 설경은 오히려 "저기서 길 잃으면 그냥 죽겠네"라는 생각부터 들게 만듭니다. 그게 영화 분위기와 정확히 맞아떨어집니다.
우리가 잘 아는 Kia Telluride는 이름부터 이 영화 배경인 콜로라도의 텔루라이드(Telluride)에서 가져왔습니다.
험준한 로키산맥과 고급 스키 리조트 이미지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SUV라는 점을 강조하려는 전략이었습니다.
실제로 텔루라이드는 겨울 휴양지로 선호하는 지역으로 유명합니다.

그리고 이 영화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게 70mm 울트라 파나비전 촬영입니다.
영화 좀 안다는 사람들은 여기서 꼭 "로드쇼 버전으로 봐야 한다"는 말을 붙입니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문제는 정작 영화 내용보다 포맷 자랑만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겁니다. 물론 70mm로 찍힌 콜로라도 설원은 압도적입니다.
화면이 넓다 못해 차갑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그런데 웃긴 건 그렇게 광활한 화면을 깔아놓고 결국 인물들은 허름한 오두막 안에 처박혀 서로 욕하고 피 흘리고 있다는 점입니다.
타란티노는 일부러 그렇게 대비시킨 겁니다. 바깥은 서부 개척 신화처럼 거대하고 장엄한데, 안에서는 인간들이 너무 추하고 찌질합니다. 이 영화는 웨스턴이라기보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원래부터 서로 증오하며 시작된 곳"이라는 냉소에 더 가깝습니다.
새뮤얼 L. 잭슨은 여기서 거의 괴물 같은 존재감을 보여줍니다. 커트 러셀은 늙고 지친 폭력성을 상징하는 느낌이고, 제니퍼 제이슨 리는 정말 보기 불편할 정도로 처절합니다.
요즘 할리우드 영화처럼 캐릭터를 깔끔하게 포장하지 않습니다. 다들 비열하고 더럽고 믿을 수 없습니다. 누가 정의로운지도 애매합니다. 타란티노는 원래 폭력을 유머처럼 소비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는데, 헤이트풀 에잇에서는 웃기다가도 갑자기 기분이 더러워집니다. 아마 의도적이었을 겁니다.
엔니오 모리코네 음악도 이야기 안 할 수 없습니다. 사실 타란티노는 원래 기존 음악 잘 가져다 쓰는 감독 이미지가 강했는데, 여기서는 제대로 된 오리지널 스코어를 붙였습니다. 그런데 음악조차 아름답기보다는 불안합니다. 듣고 있으면 "뭔가 곧 잘못될 것 같다"는 기분만 계속 올라옵니다. 결국 아카데미 음악상까지 받았지만, 이 음악 역시 영화를 편안하게 만들기보다 더 음산하게 만드는 역할을 합니다.
그게 헤이트풀 에잇입니다. 멋있는데 불쾌하고, 길고 느린데 이상하게 끝까지 보게 되고, 보고 나면 기분이 개운하기보다 인간 본성에 대한 냉소만 남습니다.
시간이 되시는 분은 보시길 바랍니다. 이 영화 좋아한다고 하면 영화 좀 본 척은 할 수 있습니다.
다만 끝까지 보고 정말 좋아한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더군요.


쏘울Walker
오밍오밍
갑돌이플렉스






오늘은 짜장 요리사 | 
Berry News | 
계란찜 뚝배기 뚝딱 | 
국가공인 번개탄리뷰 | 
Yonori Nori | 
당신의 궁금증 해소 | 

COLO COLO | 
일리노이 alpaca | 
coloradoma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