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에 불이 났다? 쿠야호가 강 화재가 바꾼 미국 환경법 - Cleveland - 1

강에 불이 났다는 말을 처음 들으면 대부분 농담인 줄 압니다. 물이 어떻게 탑니까. 그런데 클리블랜드를 가로지르는 쿠야호가 강은 실제로 여러 번 불탔습니다.

기록으로 확인되는 것만 최소 13번입니다. 1868년부터 1952년 사이에만 아홉 번 불이 났다고 합니다.

물 자체가 탄 것은 아닙니다. 강 위에 기름막과 공장 폐기물, 나무 부스러기 같은 잔해가 두껍게 떠 있었고, 그게 불쏘시개 역할을 한 겁니다.

가장 피해가 컸던 건 사실 1952년 화재입니다. 이때 피해액이 150만 달러로 기록됐습니다. 그 시절 돈으로 생각하면 작은 액수가 아니지요.

그런데도 그때는 전국 뉴스가 되지 않았습니다. 공업 도시의 강이 더러운 건 당연한 일로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굴뚝 연기가 곧 일자리라는 인식이 강하던 시대였습니다.

분위기가 바뀐 건 1969년 6월 22일입니다. 철교 위를 지나던 기차에서 튄 불똥이 강물 위 잔해에 옮겨붙었습니다.

이 불은 30분 안에 잡혔고, 두 시간 만에 완전히 꺼졌습니다. 피해도 철교 두 곳이 손상되는 정도였습니다. 솔직히 1952년에 비하면 작은 불이었습니다.

그런데 역사는 늘 규모대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여기서부터가 흥미로운 대목입니다.

당시 클리블랜드 시장은 칼 스톡스였습니다. 1967년에 대도시 최초의 흑인 시장으로 당선된 인물입니다. 그는 화재 다음 날 현장에서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스톡스 시장의 요지는 분명했습니다. 도시 혼자서는 강을 살릴 수 없으니 연방 정부가 나서라는 겁니다. 그의 형제 루이스 스톡스 연방 하원의원도 함께 목소리를 냈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인 계기가 하나 더 있었습니다. 같은 해 8월 1일자 타임지가 미국의 환경 위기를 다루면서 쿠야호가 강 화재를 소개한 겁니다.

재미있는 건 그 기사에 실린 불타는 강 사진이 1969년 것이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1952년의 더 큰 화재 사진이었습니다. 1969년 불은 너무 빨리 꺼져서 제대로 된 사진이 거의 없었다고 하지요.

요즘 말로 하면 일종의 viral moment였습니다. 사진 한 장이 수십 년 쌓인 문제를 한 번에 전국 어젠다로 끌어올린 셈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당시 연방 정부에는 환경만 전담하는 기관 자체가 없었습니다. 수질 문제는 주와 도시가 각자 알아서 하는 구조였지요.

그 뒤의 흐름은 꽤 빠릅니다. 1970년 첫 지구의 날 행사가 열렸고, 그해 12월 연방 환경보호청 EPA가 출범했습니다.

그리고 1972년, 연방 청정수법 Clean Water Act가 통과됩니다. 닉슨 대통령이 비용 문제로 거부권을 행사했지만, 의회가 이를 뒤집고 법을 성립시켰습니다.

이 법의 핵심은 전국 단위의 수질 기준을 세운 데 있습니다. 공장이 폐수를 마음대로 강에 흘려보내던 관행에 처음으로 연방 차원의 브레이크가 걸린 겁니다.

물론 불 한 번이 법을 만들었다고 단정하는 건 과장입니다. 환경법 학자들 사이에서도 이미 여러 도시의 오염 문제가 쌓여 있었고, 쿠야호가는 상징 역할을 했다는 시각이 많습니다.

그래도 상징의 힘은 무시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통계표보다 불타는 강 사진 한 장에 더 크게 반응합니다. 정책도 결국 사람이 움직이는 것이니까요.

그럼 지금 강은 어떨까요. 1987년 쿠야호가 강 유역은 오대호 일대 43곳의 우려 지역, 즉 Area of Concern 중 하나로 지정됐습니다. 그때 등록된 수질 손상 항목이 10개였습니다.

이 항목들이 하나씩 해제되고 있습니다. 2019년 초에는 오하이오 EPA가 쿠야호가 강 물고기 섭취 제한을 풀었다고 발표했습니다.

2023년에는 물고기 종양과 기형 관련 항목도 해제됐습니다. 한때 물고기가 거의 살지 못하던 강이라는 걸 생각하면 놀라운 변화입니다.

아직 끝난 건 아닙니다. 남은 항목들이 있고, 우려 지역에서 완전히 빠지려면 시간이 더 필요합니다. 50년 넘게 공을 들였는데도 그렇다는 게 오염을 되돌리는 일의 무게를 보여줍니다.

저는 시장 경제를 믿는 편이고, 과도한 규제에는 늘 경계심이 있습니다. 규제 비용이 결국 기업과 소비자에게 돌아간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쿠야호가 강의 경우는 다릅니다. 강물은 누구 한 사람의 소유가 아니고, 오염 비용은 공장이 아니라 주민과 다음 세대가 떠안았습니다. 이런 곳이 바로 정부가 기준을 세워야 하는 영역입니다.

제가 이 이야기에서 배우는 건 균형입니다. 산업이 도시를 먹여 살린 건 맞지만, 기준 없는 성장은 결국 강에 불을 붙였습니다.

요즘 클리블랜드 강변에는 카약을 타는 사람들과 강변 식당이 들어서 있습니다. 불타던 강이 이렇게 바뀌었다는 걸 알고 보면 풍경이 조금 다르게 보입니다.

혹시 이 지역에 오실 일이 있으면 강가를 한번 걸어보시길 권합니다. 미국 환경법의 출발점이 어디였는지 직접 눈으로 확인하는 것만큼 좋은 역사 공부는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