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전부터 즐겨보던 웹툰 '덴마'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표현이 있다.

“용두사미.”

처음엔 용의 머리처럼 거대하고도 정교하게 시작했는데, 끝은 뱀의 꼬리처럼 흐물흐물한 마무리로 맥이 빠졌다는 뜻이다.

실제로 덴마를 꾸준히 본 독자들은 이 표현에 거의 만장일치로 고개를 끄덕인다.

2010년, 네이버 웹툰에서 ‘덴마’가 연재되기 시작했을 때, 많은 독자들은 “이건 뭔가 다르다”며 환호했다.

퀑, 퀀텀족, 글렌다, 나우, 예언자 등 독창적인 설정이 하나둘 등장했고, 기존 웹툰에서는 보기 힘든 철학적 주제, 종교와 권력, 자유의지까지 다뤄지면서 마치 ‘웹툰계의 <매트릭스>’ 같았다.

캐릭터들 또한 마치 롤플레잉 게임 속 영웅들처럼 각자 사연과 뚜렷한 개성을 지녔다.

그중에서도 주인공 ‘덴마’는 가볍고 엉뚱한 행동 이면에 비극적인 과거를 품고 있어 매력을 더했다.

초반 독자 반응은 뜨거웠다.

“양영순이 드디어 미친 작품을 하나 냈다”, “이건 한국 SF의 한 획을 긋는다” 등 찬사가 줄을 이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미로 속에 갇히기 시작했다

문제는, 덴마의 장점이자 독이 된 ‘설정의 방대함’이었다.

처음엔 적절히 드러나는 설정이 서사에 매끄럽게 녹아들었지만, 연재 중반을 지나며 이 설정은 제어불능 수준으로 확장된다.

퀑이 뭔지, 블랙스톤이 왜 중요한지, 시간선이 어떻게 꼬였는지 아무도 모르게 되었다.

독자들 사이에서는 “양작가님은 설정을 다 적어놓긴 하셨을까?” 하는 불신까지 생겼고, 어떤 이들은 아예 “덴마 세계관 정리 위키를 따로 봐야 이해되는 만화는 문제다”라고 일침을 놓았다.

비유하자면 이렇다.

처음엔 맛집이라며 사람들이 줄 선 라멘집이 있었는데, 국물은 진하지만 면은 덜 삶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토핑으로 생밤, 젤리, 민트초코가 올라오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 그 맛이 어디 갔냐”고 외치는 손님들 앞에서 주방장은 “그건 다음 시즌에 설명드릴게요”라며 웃어넘긴 꼴이다.

덴마의 후반부 전개는 그야말로 롤러코스터였다.

“이야기가 너무 빠르게 정리된다”는 느낌을 넘어서, "도대체 왜 저 캐릭터가 저렇게 퇴장하지?" 라는 충격이 연이어 몰아쳤다.

중요하게 다뤄졌던 인물들이 마치 자취를 감추듯 사라졌고, 몇몇은 작중 한 줄 내레이션으로 “죽었음” 처리된다.

그야말로 정든 캐릭터가 갑자기 차에서 튕겨 나가듯 퇴장하는 장면이 연속되자, 독자 게시판에는 시니컬한 댓글들이 줄을 이었다.

덴마의 마지막 에필로그는 이전까지의 사건들을 정리하고 캐릭터들의 최후를 짧게 보여주는 식이었다.

하지만 독자들은 ‘정리’보다는 ‘봉합’에 가깝다고 평가한다.

이미 풀리지 않은 떡밥이 산더미인데, 마치 주인이 이사하면서 짐 정리를 포기하고 이불로 덮어버린 느낌.

‘퀑’이라는 세계관의 중심 설정은 여전히 제대로 설명되지 않았고, 퀀텀족과 예언자의 갈등, 나우의 정체, 덴마의 과거와 미래 등 중요한 줄기는 마치 블라인드를 내리듯 서둘러 덮였다.

이후 양영순 작가는 새로운 시즌을 암시하기도 했지만, 이미 한 차례 마음이 떠난 독자들에게는 큰 울림이 없었다.

왜 용두사미가 되었는가?

덴마가 용두사미가 된 이유는 단순하지 않다.

지나치게 방대한 설정, 작가의 체력적 한계, 연재 불규칙, 팬들과의 소통 단절, 서사의 과밀화, 그리고 마무리를 위한 급한 정리.

이 모든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얽히며, 한 시대를 풍미했던 명작이 “아 그거? 마무리는 좀 그랬지”라는 말로 축소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덴마는 아직도 수많은 명장면과 인상 깊은 대사를 남겼다.

“나는 죽음을 초월했다”,
“그분은 나를 고쳐주지 않으셨다.”
이런 문장들은 여전히 팬들의 머릿속에 남아 있다.

누군가는 말했다.

“덴마는 웹툰판 <로스트>다. 보는 동안은 흥미롭지만, 끝나고 나면 ‘내가 뭘 본 거지?’ 싶은 작품.”

그렇다. 덴마는 우리의 기대를 한 손에 쥐고 뛰다, 마침내 그 손을 놓쳐버린 웹툰이다.

그래도 그 초반의 황홀했던 추억만큼은 오래 남을 것이다.

마치 한때 정말 좋아했던 연애처럼.

끝은 찜찜했어도, 시작은 정말 뜨거웠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