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미국 뉴스를 보면 "외로움"이라는 단어가 심심찮게 등장합니다. 그냥 감성 에세이 소재가 아니라 정부 보고서에 대문짝만하게 나오는 걸 보면 확실히 뭔가 달라졌다는 느낌이 듭니다.
2023년 5월, 미국 공중보건서비스단 총책임자인 비벡 머시가 82쪽짜리 보고서를 하나 냈습니다. 제목부터가 "우리의 외로움과 고립의 유행"이니 이름만 봐도 심상치 않죠.
이 보고서는 외로움과 사회적 고립을 심혈관질환, 뇌졸중, 치매, 우울증, 조기 사망의 독립적 위험 요인으로 규정했습니다. 감정 문제가 아니라 의학적 위험 요인으로 취급한 셈입니다.
숫자를 보면 좀 놀랍습니다. 사회적 연결이 부족하면 심장병 위험이 29퍼센트, 뇌졸중 위험이 32퍼센트 올라간다고 합니다.
노인의 경우엔 치매 위험이 50퍼센트까지 높아진다는 대목에서 저도 잠깐 멈칫했습니다. 외로움을 그냥 쓸쓸한 감정 정도로 넘기기엔 숫자가 꽤 셉니다.
이 보고서는 사회적 연결 부족으로 인한 조기 사망 위험이 하루에 담배 15개비를 피우는 수준과 비슷하다고까지 표현했습니다. 담배 얘기까지 나오니 확실히 체감이 다릅니다.
그런데 이게 팬데믹 때문에 갑자기 생긴 문제는 아닙니다. 코로나 이전부터 미국 성인의 절반 정도가 이미 외로움을 겪고 있었다고 하니, 오래된 문제가 이제야 수면 위로 올라온 셈이죠.
갤럽 조사에서는 성인 다섯 명 중 한 명이 매일 외로움을 느낀다고 답했습니다. 매일이라는 단어가 생각보다 무겁게 다가옵니다.
세대별로 보면 결과가 좀 의외입니다. 2021년 시그나 그룹 보고서에서는 18세에서 24세 사이 응답자의 79퍼센트가 외로움을 느낀다고 답했습니다.
반면 66세 이상에서는 41퍼센트에 그쳤습니다. 나이 들면 더 외로울 거라는 통념과는 정반대라 저는 이 부분이 제일 흥미로웠습니다.
왜 이런 역전이 생겼을까 생각해보면 답은 어느 정도 뻔합니다. 젊은 세대일수록 관계를 맺는 방식 자체가 화면 너머로 옮겨갔기 때문이겠죠.
팔로워는 수백 명인데 정작 힘들 때 전화할 사람은 없다는 얘기, 다들 한 번쯤 들어보셨을 겁니다. 연결의 양은 늘었는데 질은 오히려 떨어진 셈입니다.
반면 나이가 있는 세대는 동네 모임이나 종교 활동, 오래된 친구 관계 같은 오프라인 네트워크가 여전히 단단하게 남아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결국 관계의 숫자보다 밀도가 외로움을 가르는 기준이라는 얘기입니다.
그럼 미국 정부는 왜 이걸 굳이 공중보건 문제로 못 박았을까요. 답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개인의 감정 문제로 남겨두면 아무도 예산을 쓰지 않기 때문입니다. 공중보건 문제로 지정되는 순간 의료 시스템과 지역 정책, 연구 예산이 움직일 근거가 생깁니다.
실제로 이 보고서는 여섯 가지 축으로 이루어진 국가 전략까지 제시했습니다. 사회 인프라 강화, 연결 친화적 공공정책, 보건 분야 동원, 디지털 환경 개혁, 연구 심화, 연결 문화 조성이 그 축입니다.
특히 눈에 띄는 건 병원과 의료진에게 외로움을 하나의 진료 항목처럼 다루라고 권고한 부분입니다. 혈압을 재듯이 환자의 사회적 연결 상태도 물어보라는 거죠.
디지털 환경을 손봐야 한다는 대목도 인상 깊었습니다. 플랫폼이 사람을 더 외롭게 만드는 구조라면 그 구조 자체를 바꿔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담겨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대목에서 살짝 통쾌하기도 했습니다. 플랫폼 탓만 하고 끝내는 게 아니라 정부가 직접 정책 카드를 만지겠다고 나선 거니까요.
다만 규제로 뭐든 해결된다는 식의 접근은 저는 좀 조심스럽습니다. 사람 관계라는 게 법이나 정책만으로 채워지는 영역은 아니니까요.
그래도 국가 차원에서 이 문제를 공식적으로 인정했다는 사실 자체는 의미가 큽니다. 예전 같으면 그냥 좀 외로운 거지 뭐 하고 넘어갔을 일입니다.
미국만의 얘기도 아닙니다. 영국은 이미 몇 해 전부터 외로움 담당 장관 자리를 따로 만들어 운영하고 있습니다.
여러 선진국에서 비슷한 흐름이 보인다는 건 이게 특정 나라만의 특수한 사정이 아니라는 뜻이겠죠. 사회가 편리해질수록 오히려 사람과 사람 사이 거리가 벌어지는 역설, 다들 어디선가 느껴보셨을 겁니다.
저는 이 보고서를 보면서 결국 핵심은 숫자가 아니라 태도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을 아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자주 진짜 안부를 묻느냐의 문제니까요.
바쁘다는 핑계로 미뤄뒀던 연락 한 통이 생각보다 큰 역할을 한다는 걸 이 보고서가 새삼 증명해준 셈입니다. 통계로 확인받으니 오히려 덜 민망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다음에 오랜만에 연락 온 지인이 있다면 귀찮아하지 말고 반갑게 받아보시길 권합니다. 그 전화 한 통이 서로의 심장 건강에 보탬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니까요.
결국 외로움을 개인의 나약함으로 치부하던 시대는 지나가고 있는 듯합니다. 이제는 데이터와 정책으로 다루는 공적인 문제가 됐다는 변화 하나만으로도 눈여겨볼 가치가 충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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