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애틀에서 10년, 알래스카에서 5년. 이민자의 눈으로 본 앵커리지 생활 이야기
가끔 퇴근길에 공항 활주로 너머로 보이는 설산을 바라보고 있으면 이런 생각이 듭니다.
"내가 여기까지 어떻게 오게 된 걸까?"
저는 형제초청으로 영주권을 받고 미국에 왔습니다. 처음 정착한 곳은 워싱턴주 시애틀이었습니다.
한국에서 대학 다니다 군 복무를 마친 뒤 미국에 와서 생활을 시작했는데, 2009년도만 해도 시애틀은 이민자에게 살기 좋은 도시였습니다.
물가도 안비싸고 한인마트도 있고, 교회나 모임도 쉽게 찾을 수 있었습니다. 미국 생활에 적응하기에는 시애틀만 한 곳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당시 수입은 아버지가 하시던 물류쪽 일하면서 그럭저럭 벌이를 했습니다.
어느덧 시애틀에서 10년이라는 시간이 훌쩍 흘렀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뭔가 새로운 도전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러던 중 지인의 소개로 알래스카 이야기를 듣게 됐습니다.
처음에는 저도 웃었습니다.
"알래스카?"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 결정이 제 인생의 방향을 완전히 바꿔 놓았습니다.
앵커리지에 처음 도착했을 때는 솔직히 막막했습니다.
시애틀처럼 한인 사회가 큰 것도 아니고, 한국 사람이 많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공항 밖으로 나왔는데 공기부터 달랐습니다. 도시 분위기 자체가 완전히 달랐습니다.
시애틀이 세련된 도시라면 앵커리지는 거칠지만 정직한 도시 같았습니다.
처음 2년 동안은 친척분 소개로 식당에서 일했습니다.
새벽부터 밤까지 일하는 날도 많았습니다. 설거지부터 시작해서 재료 손질, 청소, 음식 준비까지 안 해본 일이 없었습니다.
당시에는 일도 재미가 없어서 "괜히 왔나?" 하는 생각도 몇 번 했습니다.
특히 겨울이 되면 더욱 그랬습니다.
밖은 영하 수십 도인데 주방은 뜨겁고, 퇴근해서 나가면 다시 얼음 세상입니다.
그래도 버텼습니다. 군대에서도 버텼는데 이것쯤이야 하는 마음도 있었고, 이민 생활이라는 게 원래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다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현재는 미국의 대형 물류회사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앵커리지 국제공항은 생각보다 훨씬 중요한 곳입니다. 아시아와 북미를 연결하는 세계적인 화물 허브입니다.
하루 종일 대형 화물기들이 오가고 물류가 20시간 이상 쉼 없이 움직입니다.
공항에서 일하다 보면 가끔 신기합니다.
우리가 인터넷으로 주문한 물건들, 미국과 아시아를 오가는 수많은 화물이 바로 이곳을 거쳐 간다는 사실 말입니다.
무엇보다 직장이 안정적이라는 점이 가장 만족스럽습니다.
의료보험, 휴가, 은퇴연금 같은 복지 제도도 잘 갖춰져 있고 미래 계획도 세울 수 있습니다.
식당에서 일할 때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생활이 안정됐습니다.
앵커리지 생활의 또 다른 장점은 자연입니다.
퇴근하면서 보는 풍경이 엽서 같습니다.
시애틀도 아름답지만 알래스카는 규모 자체가 다릅니다. 설산과 숲, 바다와 빙하가 가까이에 있습니다.
복잡한 도심 대신 자연이 삶의 일부가 됩니다.
그리고 알래스카에 살다 보면 짭잘한 혜택도 있습니다. 바로 알래스카 영구기금 배당금(PFD)입니다.
처음 받았을 때는 신기했습니다. 친구들에게 이야기하면 다들 믿지 않습니다.
"주 정부가 돈을 준다고?"
정확히는 알래스카 석유 수익 일부를 주민들에게 배당하는 제도입니다.
저도 이제는 알래스카 생활 5년 차가 되다 보니 이런 배당금을 받는 것이 익숙해졌습니다.
물론 매년 금액은 달라집니다. 어떤 해에는 꽤 많이 나오기도 하고 어떤 해에는 적게 나오기도 합니다.
지난해에는 약 천 달러 정도 받았습니다.
큰돈은 아니지만 전기요금 내고 겨울용품 사고 나면 꽤 도움이 됩니다.
다른 주에서는 없는 혜택이라 알래스카 주민들끼리는 매년 관심을 갖고 지켜보는 뉴스이기도 합니다.
물론 단점도 있습니다.
가장 힘든 건 겨울입니다.
정말 깁니다.
한국에서 경험한 겨울과는 다릅니다. 오후 4시면 해가 지고 아침에도 늦게 밝아집니다.
며칠 동안 햇빛을 거의 못 보는 느낌이 들 때도 있습니다.
혼자 사는 사람은 외로움을 많이 느낄 수도 있습니다.
또 한인 인프라도 시애틀과 비교하면 부족합니다.
시애틀에서는 한국 음식이 생각나면 언제든 갈 수 있었지만 이곳에서는 선택지가 많지 않습니다.
물가도 비싼 편입니다. 대부분의 물건을 본토에서 가져와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저는 지금의 삶에 만족합니다.
시애틀에서의 10년이 미국 생활에 적응하는 시간이었다면, 알래스카에서의 5년은 제 자신을 더 단단하게 만든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화려한 도시 생활은 아닙니다.
하지만 정직하게 일한 만큼 보상받고, 복잡한 경쟁보다 자신의 삶에 집중할 수 있는 곳입니다.
누군가 저에게 "알래스카 살 만하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말할 것 같습니다.
쉽지는 않지만, 묵묵히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생각보다 괜찮은 곳이라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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