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마지막 월요일, 메모리얼 데이에 대한 단상 - Los Angeles - 1

이제 미국 산지도 20년 넘고 보니 5월만 되면 묘하게 기다려지는 날이 바로 5월 마지막 월요일, 메모리얼 데이입니다.

하루 더 쉬는 연휴라서 좋은 것도 있지만, 이 날은 미국이라는 나라의 분위기가 확 바뀌는 전환점 같은 느낌이 있습니다. 그냥 월요일 쉰다는 개념으로 넘기기에는 생각보다 의미도 깊고 계절 흐름까지 바꾸는 역할을 하는 날입니다.

이 날의 시작은 남북전쟁 직후 전쟁에서 희생된 군인들의 무덤에 꽃을 올리던 데코레이션 데이에서 출발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1971년에 공식 연방 공휴일로 지정되었고, 지금은 특정 전쟁이 아니라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모든 미군을 기리는 날로 자리 잡았습니다.

실제로 이날이 되면 국립묘지는 물론이고 동네 묘지에도 성조기가 꽂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작은 도시에서도 퍼레이드가 열리는데 분위기는 생각보다 차분하고 진지합니다. 가족 중 군 복무 경험이 있는 집안은 이날을 꽤 의미 있게 보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겉으로는 평온한 휴일 같지만 미국의 애국심에 기대는 미국만의 유대감이 느껴지는 날입니다.

그런데 현실적 매력은 따로 있습니다.

3월과 4월은 미국 생활을 하다 보면 애매하게 느껴지는 시기입니다. 겨울은 끝났는데 날씨는 들쭉날쭉하고 부활절은 연방 공휴일이 아니어서 2달넘게 공휴일도 없어서 일상이 늘어지기 쉽습니다.

뭔가 계속 이어지는 느낌은 있는데 확 끊어주는 계기가 없는 구간입니다. 이 흐름을 딱 끊어주는 게 메모리얼 데이입니다.

날씨도 이때부터 안정됩니다. 낮이 길어지고 햇빛이 확실히 강해지면서 사람들 움직임이 달라집니다.

바비큐 시즌이 사실상 이때부터 시작되고, 캠핑이나 야외활동이 본격적으로 늘어납니다. 남부 지방들은 이때부터 완전히 여름 모드로 들어갑니다. 그 전까지는 애매했던 계절이 확실하게 정리되면서 생활 분위기가 바뀝니다.

한인 입장에서는 이 휴일이 더 반갑게 느껴지는 이유가 있습니다.

한국은 5월에 행사가 많고 공휴일도 이어지는데 미국은 봄 시즌이 생각보다 조용하게 지나갑니다.

그래서 3월, 4월 지나면서 피로가 쌓이기 쉬운 구조입니다. 그 타이밍에 메모리얼 데이가 들어오면 체감이 크게 다가옵니다. 가족 단위로 움직이기도 좋고, 여행이나 모임을 계획하기에도 시기가 잘 맞습니다.

정리해보면 메모리얼 데이는 단순한 연휴가 아닙니다.

나라를 위해 희생한 사람들을 기억하는 의미 있는 날이면서 동시에 길고 애매했던 봄을 정리하고 여름으로 넘어가는 시작점 같은 날입니다.

미국에서 생활을 계속하다 보면 이 날이 왜 유독 기다려지는지 이제는 느껴집니다.

그런데 LA 지역은 이때부터 흐리고 구름이 잔뜩 끼는 준글룸이 시작되는 시점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