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리지 힐사이드, 부촌의 조건 - Anchorage - 1

앵커리지 시내에서 차로 20분 남짓 남쪽으로 이동하면 도시 풍경이 눈에 띄게 달라진다. 다운타운의 평범한 주택가를 벗어나 추가치 산맥(Chugach Mountains) 자락으로 올라가는 순간부터 집들의 규모와 대지 면적이 확연히 커지고, 창밖으로는 쿡 인렛(Cook Inlet)과 산 능선이 동시에 펼쳐진다. 이 일대가 바로 앵커리지에서 부유층이 모여 사는 지역으로 꼽히는 힐사이드(Hillside)와 래빗 크릭(Rabbit Creek) 권역이다.

래빗 크릭과 힐사이드 지역은 대지 면적이 넓고 산자락에 자리잡아 사생활이 보장되는 것이 특징이다. 최근 시장을 보면 이 일대 단독주택 중위가격은 70만 달러에서 100만 달러 사이에서 형성되는 경우가 많고, 조망이 뛰어난 대형 필지는 더 높은 가격에 거래되기도 한다. 앵커리지 전체 중위 주택가격이 40만 달러 안팎인 점을 감안하면 두 배 가까운 격차다.

턴어게인(Turnagain) 지역도 빼놓을 수 없다. 다운타운에서 가깝지만 바다와 인접해 일몰 무렵 쿡 인렛 너머로 지는 해를 볼 수 있는 입지 덕분에 오래전부터 의사, 변호사 등 전문직 종사자들이 자리를 잡아온 동네다. 이곳 단독주택은 55만 달러에서 65만 달러 선에서 거래되는 경우가 흔하고, 해안선에 바로 접한 매물은 이보다 훨씬 높게 형성된다.

부트레거 코브(Bootlegger Cove) 역시 다운타운과 가까우면서도 물가 조망을 갖춘 소규모 고급 주거지로 꼽힌다. 대지 규모는 힐사이드만큼 크지 않지만 접근성과 조망을 동시에 갖춰 은퇴한 전문직이나 자산가들이 선호하는 편이다.

이 지역들이 부촌으로 자리잡은 배경에는 지형적 요인이 크게 작용한다. 앵커리지는 도시 자체가 산과 바다 사이 좁은 평지에 형성돼 있어, 조망과 대지 여유를 동시에 누릴 수 있는 곳이 제한적이다. 힐사이드와 래빗 크릭처럼 산 중턱에 자리한 지역, 턴어게인처럼 해안에 접한 지역이 자연스럽게 희소가치를 갖게 된 셈이다. 여기에 앵커리지 교육구 내에서도 평가가 좋은 초중고가 이 권역에 몰려 있어 자녀를 둔 가구의 선호도도 높다.

앵커리지에는 대규모 한인 밀집 지역이 따로 형성돼 있지는 않지만, 정유업계나 의료계에 종사하는 한인 전문직 가구 중 일부가 학군과 안전성을 이유로 남쪽 힐사이드 권역을 눈여겨보는 경우가 있다. 다만 겨울철 도로 사정과 통근 거리를 함께 고려해야 하는 만큼, 실거주 목적이라면 계절별 접근성까지 따져보는 것이 현실적이다.

결국 앵커리지의 부촌은 화려한 마감재보다 조망과 대지, 그리고 학군이라는 실질적 요소로 가치가 매겨지는 시장이라 할 수 있다. 같은 예산이라도 어느 사면에 자리한 집인지에 따라 체감 가치가 크게 달라지는 곳이 바로 이 도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