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생활 20년. 자동차 정비소를 운영한 지도 어느덧 15년이 넘었다.
나는 뉴저지 펠리세이즈파크, 흔히 펠팍이라고 부르는 동네에서 자동차 정비로 먹고사는 평범한 사람이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샾에서 엔진오일 갈고, 브레이크 패드 교체하고, 체크엔진 불 들어온 차 진단하면서 하루를 보낸다.
그런데 가끔 손님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이상한 생각이 든다.
"우리는 미국에 살면서 미국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나 자신에게도 던지는 질문이다.
한국 사람들은 미국에 오면 영어부터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맞는 말이다. 하지만 살아보니 영어보다 더 중요한 게 있었다.
바로 미국이라는 나라 자체를 이해하는 것이다.
정비소를 하다 보면 별의별 사람들을 다 만난다.
이탈리아계 경찰관, 푸에르토리코 출신 소방관, 유대인 변호사, 인도계 IT 엔지니어, 러시아 이민자, 흑인 트럭 운전사까지.
처음 미국 왔을 때는 다 그냥 미국 사람으로 보였다.
그런데 알고 보니 미국은 하나의 나라가 아니라 수백 개 문화가 얽혀 있는 거대한 연합체에 가까웠다.
같은 뉴저지라도 펠팍과 남부 저지 사람은 사고방식이 다르고, 뉴욕과 플로리다 사람은 마치 다른 나라 사람처럼 여기는 경우도 많다.
그걸 모르고 살면 미국을 안다고 할 수 있을까.
예전에 정비소에 갓 이민 온 분이 찾아온 적이 있다.
"미국 사람들은 왜 이렇게 이민자들에게 불친절하죠?"
나는 웃으면서 말했다.
"미국 사람들 다 만나보셨어요?"
사실 미국 사람들은 이민자들에게 아니 그냥 사람들에게 불친절한 게 아니다. 단지 한국과 표현 방식이 다를 뿐이다.
한국에서는 정이 먼저고 관계가 먼저다. 미국은 존중이 먼저다.
그래서 상대의 영역을 함부로 침범하지 않는다.
처음에는 차갑게 느껴질 수 있지만 오래 지내보면 오히려 편한 경우가 많다.
자동차도 비슷하다.
한국에서는 차가 있으면 편리하다.
미국에서는 차가 없으면 생활 자체가 어려운 지역이 많다.
뉴욕 맨해튼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미국인은 자동차 안에서 인생의 상당 시간을 보낸다.
출근하고, 장 보고, 아이들 학교 보내고, 여행 가고, 데이트도 한다.
그래서 미국인들에게 자동차는 단순한 이동수단이 아니다.
생활 공간의 연장선이다.
20년 동안 차를 고치면서 느낀 것도 있다.
차를 보면 사람의 삶이 보인다.
차 안이 깨끗한 사람은 생활도 정돈된 경우가 많고, 정비 기록을 꼼꼼히 챙기는 사람은 재정 관리도 철저한 경우가 많다.
반대로 문제가 생길 때마다 미루는 사람은 자동차뿐 아니라 인생의 다른 문제도 비슷하게 대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
재미있는 건 국적과 상관없이 사람 사는 모습은 결국 비슷하다는 것이다.
한국인도, 미국인도, 멕시코인도, 유대인도 가족 걱정하고 돈 걱정하고 건강 걱정한다.
겉모습은 달라도 속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래서 나는 요즘 젊은 사람들에게 이런 말을 하고 싶다.
미국에서 오래 살았다고 미국을 아는 것은 아니다.
영어를 잘한다고 미국을 이해하는 것도 아니다.
뉴스도 보고, 역사도 알고, 지역마다 왜 다른지 이해하고, 사람들을 만나봐야 한다.
미국은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고 훨씬 흥미로운 나라다.
가끔 정비소 앞에서 커피 한 잔 들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20년 전 한국에서 건너온 나는 미국을 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때의 나는 미국을 거의 몰랐다.
아직도 배우는 중이다.
그래서 요즘은 누가 미국 생활 몇 년 했다고 미국 전문가인 척하면 속으로 웃는다.
미국은 워낙 크고 다양해서 몇 년 산다고 다 알 수 있는 나라가 아니다.
결국 사람도 그렇고 나라도 그렇다.
겸손하게 계속 배우는 사람이 가장 오래 살아남는다.
자동차 정비는 20년 했지만, 미국 공부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어쩌면 평생 졸업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괜찮다.
뭘 알아야 면장을 하지. 미국이라는 나라는 알면 알수록 더 모르는 게 많아지는 나라니까.


추잡60분
COR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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