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주 코스트코에 갔다가 라면 쌓아놓은 곳에서 잠깐 멈췄습니다.
평소 10개들이 한구봉지 사는데 그 신라면 옆에 처음 보는 농심 컵라면이 있더군요.
이름이 'Tonkotsu Ramen'이었습니다.
저는 아직도 일식에서 돈코츠가 뭔지도 제대로 몰랐습니다.
이름만 보고 "돈코츠? 돈까스 들어간 라면인가?"
지금 생각하면 좀 웃긴데 정말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일본 음식 이름에 '돈'이 들어가니까 돈까스가 먼저 떠올랐고, 컵라면이니 작은 돈까스 같은 고명이 들어 있나 보다 했습니다.
집에 와서 물을 붓고 먹어봤는데 돈까스는커녕 국물부터 제가 알던 라면과 완전히 달랐습니다.
신라면처럼 얼큰하고 고춧가루 맛이 확 올라오는 스타일이 아니었습니다.
국물이 뽀얗고 진하면서 약간 느끼하기도 하고, 돼지고기 특유의 향도 납니다.
한입 먹고 처음 든 생각은 솔직히 "이게 맛있는 건가?"였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두세 젓가락 먹다 보니 적응됩니다.
국물도 한 번 더 떠먹게 되고 면도 계속 들어갑니다. 먹다 보니 어디서 먹어본 맛인가 싶었는데, 생각해 보니 일본 라멘집 그 맛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조금 낯선데 계속 먹으면 제법 먹을 만한 그런 맛이요.
그래서 그제야 돈코츠가 뭔지 찾아봤습니다.
알고 보니 제가 생각했던 돈까스와는 아무 관계가 없었습니다.
일본어로 돈코츠(豚骨)는 말 그대로 돼지뼈입니다.
돼지뼈를 오랫동안 끓여 뼛속의 지방과 콜라겐 등이 국물에 섞이면서 뽀얗고 진한 국물이 만들어지는 방식입니다.
특히 후쿠오카를 중심으로 한 규슈 지역의 라멘 문화와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라멘의 역사를 조금 찾아보니 이것도 재미있습니다.
일본 라멘은 일본의 아주 오래된 전통음식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지금 우리가 아는 라멘은 중국식 면 요리의 영향을 받아 일본에서 발전한 음식입니다.
20세기 들어 도시의 중국식 면 요리가 퍼졌고, 이후 지역마다 자기 방식의 국물과 면을 만들면서 완전히 일본화됐습니다.
그래서 일본에 가면 '라멘' 하나로 끝나는 게 아니더군요.
간장을 기본으로 하는 쇼유 라멘, 된장 계열인 미소 라멘, 소금으로 맛을 잡는 시오 라멘이 있고, 돼지뼈를 진하게 우린 돈코츠 라멘도 있습니다.
지역마다 면 굵기부터 국물, 고명까지 다릅니다.
특히 돈코츠 라멘으로 유명한 하카타 쪽은 가는 면을 쓰는 경우가 많고, 면을 추가해서 먹는 '카에다마' 문화도 유명하다고 합니다.
진한 국물은 남았는데 면을 다 먹었으면 면만 한 덩어리 더 주문해 넣어 먹는 방식입니다.
이걸 알고 나니 컵라면 하나가 갑자기 다르게 보였습니다.
한국 라면은 대체로 국물의 매운맛이 먼저 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신라면을 먹으면 첫 숟가락부터 "아, 이 맛이지" 하는 게 있죠. 그런데 돈코츠는 방향이 다릅니다.
매운맛으로 치고 들어오는 게 아니라 돼지뼈 국물의 묵직하고 고소한 맛으로 갑니다.
그래서 저처럼 평소 한국 라면에 익숙한 사람은 첫입에 "조금 밋밋한데?" 혹은 "약간 느끼한데?"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절반쯤 먹었을 때는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어? 이거 은근히 괜찮네." 결국 국물까지 거의 다 먹었습니다.
코스트코에서 처음 봤을 때는 돈까스 들어간 특이한 컵라면인 줄 알고 집어왔는데, 덕분에 45살에 돈코츠가 돼지뼈라는 것도 알게 되고 일본 라멘 역사까지 찾아봤습니다.
다음에 코스트코 가면 또 살 거냐고요?
처음 먹었을 때라면 "글쎄"였는데, 지금 물어보면 한 번 더 살 것 같습니다.
이상하게 돈코츠라는 게 첫인상보다 두 번째 인상이 좋은 라면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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