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려서부터 우리 집은 가난했었고
남들 다하는 외식 몇 번 한 적이 없었고
일터에 나가신 어머니 집에 없으면
언제나 혼자서 끓여먹었던 라면
그러다 라면이 너무 지겨워서
맛있는 것 좀 먹자고 대들었었어
그러자 어머님이 마지못해 꺼내신
숨겨두신 비상금으로 시켜주신
짜장면 하나에 너무나 행복했었어
하지만 어머님은 왠지 드시질 않았어
어머님은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어
어머님은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어
야이야아아 그렇게 살아가고
그렇게 후회하고 눈물도 흘리고
2026년도인 이제 우리 시대의 가난은 더 이상 자장면 한 그릇을 못 먹는 배고픔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90년대 말 g.o.d 노래 속 자장면이 가난한 환경에서 어머니의 희생을 상징하는 눈물의 음식이었다면, 요즘 저는 이런 생각이 듭니다. 이제 세상이 바뀌면서 자장면 한 그릇 정도는 물이나 공기처럼 누구나 아무 생각 없이 누릴 수 있어야 하지 않나. 그게 정말 그렇게 어려운 이야기일까.
과거의 가난이 말 그대로 굶주림이었다면 지금 한국 사회의 가난은 기회의 부족과 관계의 고립으로 바뀌었습니다.
요즘 청년들에게 자장면은 가격의 문제가 아닙니다. 배달 앱 화면을 한참 들여다보다가 제일 싼 메뉴를 고르는 순간의 자괴감, 그리고 그 음식조차 혼자 방 안에서 먹어야 하는 고립감이 요즘판 자장면의 의미입니다. 경제 규모는 세계 상위권인데 노인 빈곤율과 자살률은 여전히 높고 자영업자와 플랫폼 노동자들은 내일이 불안해서 오늘을 담보로 사는 현실 속에 놓여 있습니다.
이 지점에서 기본소득이라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모든 국민에게 조건 없이 최소한의 생활비를 지급하자는 이 개념은 이제 더 이상 이론서에만 있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인공지능과 자동화로 일자리가 빠르게 바뀌는 시대에 기본소득은 생존을 지탱하는 사회 인프라로 다뤄지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기본소득이 물과 공기처럼 자연스러운 제도가 되려면 몇 가지 관문을 넘어야 합니다.
먼저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합니다. 탄소세, 데이터세, 로봇세처럼 새로운 부가 창출되는 영역에서 나온 수익을 사회 전체가 공유하는 구조가 만들어져야 합니다. 지금의 디지털 경제는 극소수 기업에 부가 쏠리고 있는데, 이 구조를 조정하지 않으면 기본소득 논의는 늘 막다른 골목에 부딪히게 됩니다.
다음은 노동에 대한 인식 변화입니다. 일하지 않으면 먹지 말라는 오래된 사고방식은 이미 기술 사회와 맞지 않습니다. 기계가 인간 노동을 대체하는 시대에 기본소득은 게으름을 부추기는 돈이 아니라, 소비와 경제를 유지하는 윤활유이자 사회 안정장치로 봐야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은 기본의 기준입니다. 자장면 한 그릇이 상징하는 최소한의 삶의 품격이 어디까지인지 사회가 함께 정의해야 합니다. 단순히 굶지 않는 수준이 아니라, 누구나 사회의 구성원으로 존엄하게 살아갈 수 있는 선을 만드는 것이 기본소득의 본질입니다.
우리는 이미 그 가능성을 잠시 경험했습니다. 코로나 시절 재난지원금이 지급되던 때 많은 사람들이 가족과 자장면을 시켜 먹으며 숨통이 트였다고 말했습니다. 가난이 개인의 잘못이 아니라 구조의 문제라는 걸 사회 전체가 체감했던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결국 자장면을 아무 생각 없이 먹는 날이 언제 올지는 우리 사회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부의 편중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냉소를 넘어, 인간은 태어난 것만으로도 품위 있게 살 권리가 있다는 생각이 제도와 예산으로 이어질 때 그날은 가까워질 것입니다.
언젠가 자장면이 더 이상 눈물의 상징이 아니라 그냥 평범한 저녁 메뉴가 되는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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