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밥상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반찬입니다. 지금은 많은 미국인들이 한식을 즐기기 때문에 반찬문화에 익숙해 있지만 30년전만 해도 무료로 계속 리필해주는 단품음식인 반찬은 생소한 문화였습니다.
반찬(飯饌)이란, 식사 중 주식인 밥으로는 충족되지 않는 영양소를 보완하거나, 좀 더 맛있고 배부르게 먹기 위해 곁들여 먹는 음식을 말합니다. 단순히 사이드디시 정도로 여길 수도 있지만, 사실 반찬은 한국인의 생활 문화, 계절감, 정서까지 모두 담고 있는 중요한 존재입니다.
김치는 말할 것도 없이 거의 모든 식사에 등장하는 기본 메뉴이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반찬 가짓수를 셀 때 김치는 따로 치지 않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즉, 김치는 기본이고, 그 외에 몇 가지가 더 있느냐가 기준이 되는 것이죠.
한국 사람들은 일상적인 식사에서 평균적으로 3가지에서 6가지 정도의 반찬을 곁들여 먹는다고 합니다. 일반 가정식의 경우에는 보통 35가지 반찬에 국이 하나 나오는 구성이 많습니다. 김치 한 가지는 기본이고, 그 외에 나물, 볶음, 조림, 무침 등으로 24가지가 채워지죠.
혼자 식사할 때는 간단하게 12가지 반찬에 국 한 그릇으로 끝내는 경우도 많고요. 외식 식당에서는 백반집이나 한식 뷔페처럼 반찬을 58가지 정도 제공하는 곳이 많습니다. 손님 입장에서는 반찬이 많을수록 정성이 들어간 집이라고 느끼기 때문에, 반찬은 맛 못지않게 중요한 이미지 요소이기도 합니다. 전통 한정식 같은 경우에는 10가지에서 많게는 20가지 넘는 반찬이 한꺼번에 나오는 경우도 있죠.
한국과 비슷하게 일본도 쌀밥(米ごはん)을 주식으로 하는 가정식 문화가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반찬을 おかず라고 부르는데, 기본 개념은 비슷하지만 한국에 비하면 반찬 수가 적은 편입니다. 특히 일본의 외식문화에서는 반찬이 필수적이지 않고, 리필이 가능한 구조도 거의 없습니다. 반면 한국에서는 외식을 할 때 반찬이 전체 가격에 포함되어 있고, 리필도 자유로운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일본 내 한식당조차 반찬 리필은 추가 비용이 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한국 외에는 초밥, 라멘 등 한 그릇으로 완성되는 메뉴들이 일식의 대표 이미지로 자리잡은 것 같습니다.
반찬이라는 개념 자체는 아주 오래된 역사적 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삼국시대 이전 고대의 기록이나 벽화 등을 보면, 곡식 중심의 식사에 나물이나 고기 같은 부재료를 곁들였다는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그만큼 오래전부터 주식 외의 ‘찬’은 밥상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였던 셈입니다.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는 유교적 질서 속에서 반찬의 구조가 계급별로 체계화됩니다. 흔히 말하는 3첩 반상, 5첩 반상, 7첩, 9첩, 12첩 반상 같은 것이 그것입니다. 평민 가정에서는 3첩 반상이 일반적이었고, 양반가에서는 5첩이나 7첩 반상이 보편적이었으며, 9첩이나 12첩 반상은 궁중이나 상류층에서나 볼 수 있는 상차림이었습니다. 이렇듯 반찬의 가짓수는 단순히 음식 종류를 넘어서, 신분과 위세를 보여주는 수단이기도 했습니다.
이 시기에는 저장식 반찬도 발달했는데요, 계절마다 식재료가 달라지기 때문에 보관과 저장이 매우 중요했습니다. 그래서 김치, 장아찌, 젓갈 같은 저장성이 높은 반찬이 발달했고, 그 문화가 오늘날의 김치냉장고까지 이어진 셈입니다.
일제강점기 이후에는 일본 요리와 서구 조리법이 한국 식문화에 스며들기 시작합니다. 이때 돈까스, 유부초밥, 장국, 카레 같은 반찬류가 한국 가정에도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고, 해방 이후 미군 문화가 유입되면서 스팸, 햄, 마요네즈 샐러드, 피클 같은 서양식 반찬도 등장하게 됩니다. 1980년대 이후에는 산업화와 도시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반찬도 간편하고 빠르게 조리할 수 있는 방향으로 변화합니다. 마트에서 쉽게 구입할 수 있는 반찬들이 많아졌고, 도시락 문화도 대중화되면서 반찬은 공장에서 대량생산되는 상품이 되기도 했습니다.
오늘날에는 반찬이 과거의 신분 상징을 넘어, 개인의 취향과 건강, 정체성을 표현하는 수단이 되고 있습니다. 김치만 해도 종류가 수십 가지에 이르고, 요즘엔 비건 반찬이나 저염 반찬, 글루텐프리 반찬 같은 선택지도 넓어졌습니다. 한식을 세계화하면서 외국인의 입맛에 맞춘 퓨전 반찬도 점점 늘어나고 있고요.
결국 반찬은 단순한 밥의 보조자가 아니라, 한국인의 삶과 철학, 그리고 정서를 담아내는 그릇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연의 계절감을 담고, 가족 간의 정을 표현하며, 먹는 사람의 건강과 입맛까지 고려하는 깊은 문화가 반찬이라는 이름 안에 녹아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인지 한국인의 밥상에는 늘 작지만 다채로운 반찬들이 자리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