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가면 애 키우기 좋대.”
“공립 교육도 좋고, 공기도 좋고, 주변사람들 눈치 안 봐서 편하대.”
“거기선 널 위해 살 수 있어.”
이민을 결심했던 많은 한국 엄마들의 귀에 익숙했던 말들이다.
낯선 땅에서의 새로운 삶, 더 나은 미래를 향한 기대감, 아이들에게 더 넓은 세상을 열어주고 싶다는 일념이 그들을 미국행을 결심하게 했다.
하지만 도착한 그곳에서 마주한 현실은, 예상과는 조금 달랐다. 아니, 많이 달랐다.
친구 없다는 건 단순한 외로움이 아니다
한국에서라면 평범한 일상이었던 “같이 점심 먹자”, “애들 유치원 끝나고 놀이터에서 보자” 같은 소소한 약속은 이곳에선 찾아보기 어렵다. 낯선 이웃, 다른 문화, 불확실한 언어 속에서 누군가에게 먼저 말을 건다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다. 더군다나 한국 커뮤니티가 있다고 해도, 이미 형성된 소모임이나 교회 그룹에 새로 끼어들기는 여간 부담스러운 일이 아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혼자’가 익숙해진다. 하루 종일 아이 챙기고 집안일 하다 보면 어느새 해가 지고, 말 한마디 나누지 못한 날들이 쌓인다. 처음엔 이방인의 삶이 낯설고 불편했지만, 시간이 지나며 외로움은 서서히 고립감으로 바뀌기 시작한다.
남편과의 거리, 더 멀어지는 이유
한국에선 같은 언어, 같은 문화 안에서 자연스럽게 나눴던 대화들이 이민 후엔 점점 줄어든다. 남편은 생계를 책임지느라 바쁘고, 일터에서 미국식 소통에 익숙해지며 변화해간다. 반면 아내는 아이 양육과 가족의 뒷바라지에 전념하다 보니 외부와의 접점이 점점 사라진다.
"나는 왜 여기까지 왔을까?"
"이게 진짜 내가 원했던 삶일까?"
이런 생각이 들 때쯤, 대화가 줄어든 부부 사이엔 침묵이 쌓인다. 아이가 커 갈수록 엄마는 더 외롭고, 남편은 점점 집이 아닌 외부에서 위로를 찾는다. 가끔은 같은 집에 살고 있는 두 사람 사이에 바다보다 깊은 간극이 느껴진다.
아이는 잘 크는데, 나는 멈춘 느낌
이민 후 엄마들은 자신을 ‘엄마’ 외에는 다른 이름으로 부르지 않는다. 아이 학교 일정을 따라 하루를 짜고, ESL 수업 몇 개 듣는 것 외엔 대부분 시간을 아이에게 쏟는다. 아이가 영어로 쭉쭉 성장할수록, 자신은 그만큼 세상과 단절된 기분이 든다.
아이의 교실은 넓어지고 친구는 많아지지만, 엄마는 자신의 세계가 점점 작아지는 것을 느낀다. 아이가 자신감을 얻을수록, 엄마는 자존감을 잃는다. 아이의 눈부신 성장 이면에, 아무도 모르게 멈춰선 엄마가 있다.
커뮤니티는 있지만, 속할 수 없는 벽
한인 마켓, 한인 교회, 한인 학원. 커뮤니티는 존재하지만, 진정한 관계는 쉽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이미 자리를 잡은 사람들은 새로 온 사람에게 쉽사리 마음을 열지 않고, “여기선 알아서 살아야지”라는 말이 암묵적으로 떠돈다. 누군가의 시선과 뒷말을 의식하게 되는 순간, 엄마들은 더더욱 입을 닫고 스스로를 보호하기에 급급해진다.
결국 ‘미국에서의 삶’은 더 자유롭고 여유로운 게 아니라, 더 조심스럽고 더 고립된 길이 되기도 한다. 아이에게는 넓은 세상, 엄마에겐 좁아진 울타리인 셈이다.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무작정 누군가를 기다릴 수는 없다. 지금 외롭다면, 용기를 내서 먼저 다가가야 한다. 같은 동네에 사는 엄마에게 인사를 건네고, 아이 학교 행사에서 소소한 대화를 시도해보자. 영어가 완벽하지 않아도, 마음은 통한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나’를 잃지 않는 것이다. 하루에 30분이라도 내가 좋아했던 일을 해보자. 책을 읽고, 걷고, 글을 쓰고, 혹은 예전처럼 음악을 들어보는 것이다. 엄마이기 전에, 아내이기 전에 나는 '나'이기 때문이다.
미국 이민 생활이 외롭고 고된 길인 건 맞지만, 완전히 혼자일 필요는 없다. 당신처럼 외로운 누군가도 어딘가에 분명히 있다. 그 친구들, 어쩌면 우리가 먼저 찾아야 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