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거울 속 그 여자가 낯설게 느껴졌다"

어느 날, 거울을 보는데 이상했다.
세수를 하고 물기를 닦으며 무심코 쳐다본 내 얼굴이,
분명히 나인데... 어디선가 처음 보는 사람 같았다.

피부는 예전보다 얇아진 듯하고, 눈가엔 깊어진 주름이 선명했다.
볼살은 좀 빠졌는데, 턱선은 흐릿해졌고, 팔자 주름도 이전보다 너무 깊어졌다.
화장기 없는 민낯의 나를 마주한 순간, 마음 한 켠이 스르르 무너졌다.
"언제 이렇게 나이가 들었지?"

나이를 '먹는 것'과 '느끼는 것'은 다르다

나는 어느새 환갑을 넘긴 중년의 끝자락이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마음속 어딘가에 30대의 나를 품고 있다.
그때의 열정, 자존심, 약간의 허영심, 그리고 아직은 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
몸은 시간의 흔적을 그대로 안고 있지만, 마음은 여전히 젊음을 꿈꾼다.

그래서일까, 거울 속 그 낯선 여자를 보며 불쑥불쑥 당혹감이 몰려온다.
내가 아닌 누군가가 내 몸에 들어와 있는 기분.
주름 하나, 기미 하나가 내 과거를 부정하는 것 같아 서운하고,
한편으론 그 시간을 부끄러워하는 내가 더 낯설다.

여성에게 나이든다는 것

남자보다 여자는 훨씬 더 빨리 '노화'를 체감한다.
피부, 머리카락, 체중, 그리고 사회적 시선.
화장을 해도 숨길 수 없는 눈 밑 그늘,
열심히 가꿔도 점점 떨어지는 피부 탄력,
예전 같지 않은 체력과 쉽게 지치는 몸.

게다가 주변의 반응은 냉정하다.
한 살 두 살 먹어가며 "이제는 좀 나잇값 하라"는 말부터
"나이 드니까 얼굴이 변했네" 같은 악의 없는 말도 꽤 큰 상처가 된다.
내가 달라진 게 아니라, 세상이 나를 바라보는 방식이 달라졌다는 걸 실감하는 순간들이 온다.

그러나, 나이는 나만의 훈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제 나이 드는 나를 조금씩 받아들이기로 했다.
물론 하루아침에 되는 일은 아니었다.
한때는 미시USA에서 좋다는 안티에이징 크림을 잔뜩 바르고,
헤어스타일을 바꾸고, 화장을 약간 짙게 하며 '늙어 보이지 않으려' 애쓴 적도 있다.
하지만 그런일들은 결국 나 자신을 더 지치게 할 뿐이었다.

지금의 나는 그 모든 시간을 살아낸 '나'다.
아이를 낳고 키웠고,
좋아하는 사람과 울고 웃었고,
실패하고, 성공하고, 힘든기간 견디고 일어섰고,
어느 시절엔 아파서 누웠고, 또 어느 계절엔 바람처럼 자유로웠다.

그 시간들이 모여 지금의 얼굴을 만들었다.
주름은 웃음의 횟수고,
흐릿한 눈빛은 내 안의 깊이를 뜻한다.
그걸 이제는 인정하고 싶다.
그토록 열심히 살아낸 내가 깎이고 지워지듯 늙어가는 게 아니라,
더 단단해지고, 깊어지고,  내가 살아온 느낌들이, 경험들이 배어가는 거라고.

지금, 그리고 앞으로

나는 여전히 매일 거울을 본다.
하지만 예전처럼 단점만 찾기 위해 쳐다보진 않는다.
가끔은 화장도 안 한 얼굴에 커피 한 잔 들고,
"그래도 괜찮아, 오늘도 잘 살고 있잖아" 하고 웃어본다.

누구에게는 한물간 여자로 보일지 몰라도,
나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고, 나를 가꿀 줄 아는 사람이다.
세월이 주는 속도에 휩쓸리기보다,
그 시간을 정면으로 마주하며 '내 나이'를 살아가는 중이다.

그리고 나처럼 거울 속 자신이 낯설었던 모든 여자들에게 말하고 싶다.
그건 늙은 모습이 아니라, '살아온 시간의 증명'일 뿐이라고.
우리는 여전히 충분히 아름답고, 여전히 충분히 살아갈 날이 많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