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팍에서 살다 보니 이곳은 한국 사람들도 많고 교육 문제는 미국식과 한국식이 자연스럽게 섞이곤 하는데, 요즘 저희 집에서 화제가 된 건 체스예요.

미국 대학교다닐때 체스 동아리 회원으로 학교 2위까지 했던 남편이 9살 아들에게 체스를 가르쳐 보자고 제안을 했거든요.

한국에서라면 아마 바둑이나 오목을 떠올렸을 텐데,  솔직히 ' 체스가 너무 복잡하지 않을까?' 싶었어요.

하지만 조금 더 생각해 보니 체스가 단순한 게임이 아니라 두뇌 발달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보이더라고요.

아이가 집중해서 한 수 한 수 두다 보면 자연스럽게 사고력과 인내심을 기르게 될 거라는 기대가 생겼습니다. 요즘 아이들 생활을 보면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같은 전자기기에 노출이 많아 생각을 깊게 하는 시간이 부족한데, 체스는 오히려 그 반대의 경험을 줄 수 있을 것 같아 마음이 놓였어요.

남편이 아들에게 첫 체스를 가르치던 날을 아직도 기억해요. 폰, 나이트, 비숍 같은 말을 설명하는데 아들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호기심 가득한 눈빛을 보이더라고요. "엄마, 얘는 앞으로만 가네?" 하면서 묻는데, 작은 말 하나에도 성격과 규칙이 다 다르다는 게 아이에게는 신기하게 다가온 것 같아요. 처음에는 금방 지루해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집중해서 판을 들여다보는 모습을 보니 '아, 이게 생각보다 아이에게 맞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확신이 들었죠.

체스를 배우면 단순히 머리가 좋아지는 걸 넘어서 창의력과 문제 해결 능력까지 기를 수 있다고 해요.

같은 상황에서도 여러 가지 전략이 나오고, 상대가 예상치 못한 수를 두면 거기에 어떻게 대응할지 고민하는 과정이 아이에게는 좋은 훈련이 되는 거죠. 저는 이 부분이 참 마음에 들어요. 인생도 늘 계획대로 흘러가는 게 아니잖아요. 체스를 통해 아이가 변화에 맞서 유연하게 생각하는 법을 배우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물론 조심해야 할 점도 있더라고요. 체스가 승패가 분명한 게임이다 보니 아이가 이기는 데 너무 집착하거나, 반대로 지는 걸 견디지 못할 수도 있어요.

그래서 저는 옆에서 "누가 이겼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네가 어떤 생각을 했는지가 더 중요해"라고 자주 말해 주려고 합니다. 결과보다는 과정을 중시하는 태도를 어릴 때부터 가지면 공부나 다른 활동에서도 훨씬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을 거라 믿어요.

저희 집 거실 한쪽에 이제 작은 체스판이 자리 잡았어요. 주말이면 남편과 아들이 마주 앉아 체스를 두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풍경이 되었죠.

저는 그 모습을 보며 꼭 두뇌 발달만을 기대하는 게 아니라, 아빠와 아들이 함께 만들어 가는 시간 자체가 큰 의미라고 느낍니다. 어릴 때 부모와 함께한 시간이 결국은 아이에게 평생 힘이 된다는 걸 알기에, 체스는 우리 가족에게 단순한 놀이 이상의 가치를 주는 것 같아요.

한국에서는 바둑을 두며 사고력을 기른다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펠팍에 사는 저희 가족에게는 체스가 그런 역할을 하고 있어요. 저는 이제 '체스가 우리 아들 두뇌 발달에 도움이 될까?'라는 질문보다 '이 시간이 우리 가족에게 얼마나 소중한 추억이 될까?'라는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