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도 성이 있나요?” 처음 이 질문을 들었을 때, 저는 약간 웃음이 났어요.

성이라 하면 중세 유럽의 돌로 된 성벽과 망루, 드라마틱한 전투가 떠오르니까요.

하지만 미국에도 분명 ‘성(Castle)’과 ‘요새(Fort)’의 흔적이 있습니다.

특히 미국 동부에는 유럽 열강들이 이 땅을 놓고 다투던 시절, 직접 건축한 군사 요새들과 방어 시설들이 오늘날까지도 잘 남아 있어요.

동부에서 가장 인상적인 역사적 요새들

  1. 포트 티콘데로가 (Fort Ticonderoga, 뉴욕 주)
    이 요새는 프랑스와 인디언 전쟁, 그리고 미국 독립전쟁에서 중요한 전략적 요지였어요.
    원래는 프랑스군이 1755년에 세운 카리용 요새(Fort Carillon)였는데,
    나중에 영국군과 미국 독립군에게 점령되며 이름이 바뀌었죠.
    지금은 박물관으로 개조되어 당시의 생활 모습과 무기, 군복 등을 전시하고 있어
    아이들과 함께 역사 공부 겸 여행하기 딱 좋은 곳이에요.

  2. 포트 맥헨리 (Fort McHenry, 메릴랜드 주)
    볼티모어 항구를 지키기 위해 18세기 후반 건설된 이 요새는,
    1812년 영국군의 공격을 막아낸 전투로 유명해요.
    이 전투를 본 프랜시스 스콧 키가 감동하여 쓴 시가 바로
    오늘날 미국 국가 “The Star-Spangled Banner”랍니다.
    역사적 상징성과 위치 덕분에 매년 수많은 관광객이 찾는 명소예요.

  3. 포트 크리스티안 (Fort Christian, 미국령 버진 아일랜드)
    1666년에 덴마크가 건설한 이 요새는 미국 땅에서 가장 오래된 유럽식 건축물 중 하나예요.
    유럽의 중세풍 외관이 남아있어, 마치 덴마크 시골 마을에 와 있는 느낌을 줍니다.
    현재는 박물관과 전시관으로 운영되고 있어,
    미국령의 또 다른 역사적 지점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입니다.

  4. 포트 노크스 (Fort Knox, 메인 주)
    이곳은 금을 보관하는 켄터키주의 포트 녹스(Fort Knox Bullion Depository)와는 다릅니다.
    메인 주의 포트 노크스는 19세기 중반 미국이 영국과의 분쟁 가능성에 대비해 만든
    강철 대포와 두꺼운 석조 요새입니다.
    여름에는 요새 투어뿐 아니라 ‘고스트 투어’도 열려 아이들과 함께 즐기기 좋아요.

미국 동부는 유럽 이민자들이 처음 발을 디딘 지역입니다.

17세기부터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스페인, 포르투갈 등의 식민 세력이 지속적으로 이 지역에서 군사적 요충지를 두고 다툼을 벌였죠. 자연스럽게 해안가나 강변 근처에 요새를 건설하고, 방어를 위한 성벽이나 포진지를 만들게 된 겁니다.

게다가 당시 원주민과의 충돌, 그리고 유럽 열강 간의 식민지 쟁탈전이 빈번했기 때문에, 병력 주둔 및 무기 보관이 가능한 요새는 필수적인 시설이었어요. 미국 건국 이전의 ‘유럽의 흔적’은 바로 이 성들과 요새들에 고스란히 남아 있는 셈이죠.

중서부 지역, 예를 들면 오하이오, 일리노이, 미주리, 캔자스 등에는 이렇다 할 '성'이 거의 존재하지 않습니다.

미국 동부는 1600년대부터 유럽 세력이 점령했던 땅이지만, 중서부는 대부분 1800년대에 개척이 시작된 지역입니다. 이 시기엔 이미 군사 기술이 발전해 크게 성을 짓는 전통은 의미가 없어졌어요. 방어보다는 이동성 높은 군대, 무기, 철도망이 더 중요했죠.

그리고 중서부는 바다와 접하지 않고, 주변 국가와의 국경도 멀기 때문에 방어용 성을 세울 필요성이 낮았습니다. 게다가 유럽 열강 간의 충돌보다는 원주민과의 분쟁이 중심이었고, 이를 위해선 요새보다는 일시적인 병영, 이동형 기지가 더 현실적인 선택이었죠.

동부는 강과 바다, 언덕이 많아 방어에 유리한 지형이었지만, 중서부는 대부분 평야 지대입니다. 요새를 지어도 방어 효율이 낮은 땅이기 때문에, 차라리 철도와 텐트형 진지, 보병 중심의 기동전이 더 효과적이었어요.

미국 여행을 계획 중이라면, 단순한 관광지가 아닌 역사적 의미가 깃든 성과 요새를 중심으로 여행 코스를 짜보는 것도 추천드려요.

특히 동부는 미국 건국 이전의 유럽 흔적을 가장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곳이고, 그 속엔 우리가 잘 모르는 이민과 전쟁, 협력과 배신의 역사가 살아 숨쉬고 있거든요.

성을 가보면 시대의 긴장감, 생존을 향한 의지, 그리고 새로운 세상을 꿈꾸던 사람들의 흔적이 있답니다.

올 여름, 성을 중심으로 떠나는 동부 여행 어떠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