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달라스에 산 지도 어느덧 몇 년째. 점심시간엔 다운타운 갔다가 회사 동료가 길 건너 건물을 가르키며 말했다.
"야, 너 저 시청 건물이 로보캅에 나온 거 알아?"
몰랐다. 정말 몰랐다.
출퇴근하면서 매일같이 보던 그 거꾸로 박힌 피라미드 같은 건물이, 1987년에 "여기가 디트로이트요"라고 했던 곳이라니.
1500 Marilla St. 달라스 시청.
그런데 이 건물, 가까이서 보니까 진짜 이상하게 생겼다. 위로 갈수록 넓어진다.
아래로 갈수록 좁아진다. 물리적으로 어떻게 안 무너지는 건지 모르겠다.
알고 보니 I.M. 페이라는 양반이 설계했단다. 루브르 박물관 앞에 유리 피라미드 만든 그 사람. 1978년에 완공됐고.
광장에 서서 건물을 올려다보는 순간, 머릿속에서 갑자기 영화 BGM이 깔리기 시작했
다. 그 묵직한 신디사이저 소리. "OCP, We are Omni Consumer Products."
로보캅 영화에서 그 악덕 대기업 본사로 등장했던 게 바로 이 건물이다.
미래적이고, 차갑고, 관료주의 끝판왕 같은 느낌. 그러니까 영화 만드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여기다, 여기" 했을 거다.
영화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로보캅 속 디트로이트는 진짜 막장이다.
강도가 활개치고, 마약상이 거리를 점령하고, 경찰이 민영화되는 디스토피아. 그런데 그 황량한 거리 장면들이 다 달라스 다운타운에서 찍힌 거다.

이거 좀 짚고 가자. 1980년대 중후반 텍사스가 어떤 상태였냐.
석유 호황이 끝물이었다. 유가가 폭락하면서 텍사스 경제 전체가 휘청거리던 시기다.
그래서 달라스 도심 곳곳에 비어 있는 건물, 사람 없는 거리, 산업 시설 폐허 같은 게 즐비했다.
영화 제작진 입장에서는 "디트로이트의 미래 폐허"를 표현할 로케이션이 그냥 길거리에 굴러다니고 있었던 셈이다.
아이러니하지 않나. 디트로이트는 자기네 도시 망한 모습 보기 싫어서 영화 협조 안 해줬는데, 텍사스 달라스가 그 역할을 대신 맡았다.
게다가 그때 텍사스도 진짜 망해가던 중이었고. 망한 도시 코스프레를 진짜 망해가던 도시가 했다. 이거 무슨 인디 영화 시놉시스 같은데.
로보캅을 다시 봤다. 솔직히 어릴 때는 "와 멋있다, 총 쏘는 사이보그" 이게 다였다. 그런데 33살 먹고 다시 보니까 이게 SF 액션 영화가 아니라 풍자극이더라.
거대 기업이 경찰을 민영화한다. 사람을 부품처럼 갈아 끼운다.
TV에서는 끔찍한 뉴스 사이사이에 우스꽝스러운 광고가 끼어든다. 임원진이 회의실에서 사람 목숨 가지고 ROI 계산을 한다.
1987년 영화가 2026년에 더 무서운 게 정상인가? 폴 버호벤 이 양반, 예언자였나 싶다.
그리고 OCP 본사 회의실 장면. 그 차갑고 권위적인 느낌. 다시 보니까 그게 다 달라스 시청의 건축적 분위기에서 나온 거였다
. 페이가 설계할 때 "관료주의의 미래"를 의도하진 않았겠지만,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어버렸다.
건물이 영화의 주연 중 하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로보캅 팬이거나, 영화 촬영지 순례하는 게 취미인 분들. 달라스 오시면 무조건 들러야 하는 곳이다.당신이 만약 달라스에 산다면, 그리고 로보캅을 한 번이라도 봤다면, 이번 주말에 1500 Marilla St 한 번 들러보시라.


쏘울Walker
타코먹고행복
urbanfoxrider1955
NG텔레콤




COLO COLO | 
펜실베이니아 정보 뉴스 | 
대박전자제품 CNET | 
칸영화 블로그 제작소 | 

NEXT ROUND | 
텍사스 이주 이야기 | 
Heart Ticker | 

Raomi New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