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스 파머스 마켓에 다녀왔는데 평소 기대했던 '파머스 마켓' 느낌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농부들이 직접 키운 채소랑 과일을 트럭에 싣고 와서 싸고 신선하게 팔던 그런 장터 이미지를 떠올렸거든요. 그런데 막상 가보니, 이건 좀 실망스럽더라구요.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눈에 들어온 건 신선한 과일보다 티셔츠, 모자, 아이들 책 같은 것들이었어요.
분명 시장 이름은 파머스 마켓인데, 실제 농산물 파는 부스는 손에 꼽을 정도였습니다.
겨우 눈에 띈 수박 가격을 보고는 한숨이 나왔습니다. 15달러??
HEB나 월마트 가서 사먹지 여긴 왜 옵니까? 라고 광고하는것도 아니고.
파머스 마켓이라는 게 마트보다 저렴하고 신선한 게 장점이라고 생각해왔습니다. 건물 임대료나 복잡한 유통망을 거치지 않으니 농부들이 직접 가격을 낮출 수 있는 게 핵심 아닌가요?
그런데 달라스 마켓은 전혀 그런 느낌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일반 마트보다 더 비싸고, 뭔가 '현지 농부의 땀과 정직' 대신 '아트 페어 같은 기념품 장터' 느낌이 강했죠.
그냥 하루 나들이로 가서 구경하고 분위기를 즐기는 데는 괜찮지만, 정기적으로 장 보러 갈 곳은 아니라는 생각이 확 들었습니다.
제가 이런 생각을 하는 이유는 이전에 맥키니 쪽 마켓에서 친구를 도와서 파머스마켓 장사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본 건 새벽같이 대형 박스에 담긴 도매 과일과 채소를 쓸어 담는 사람들이었죠. 그 박스들은 대형 트럭들이 도매로 배달하는 물건이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도매로 산 걸 작은 바구니에 담아 "우리 농장에서 키운 것"처럼 포장한다는 거였어요.
특히 충격적이었던 건 수박 장사였습니다. 도매에서는 'Texas' 브랜드가 붙은 수박 한 통에 3달러 정도였는데, 이걸 통째로 팔지 않고 네 등분으로 잘라서 한 조각당 5~8달러에 팔더라구요. 그렇게 하면 수박 한 통이 20달러 넘게 팔리는 거죠. 소비자 입장에서는 "신선하고 현지 농부가 직접 키운" 걸 산다고 믿지만, 사실 절반 이상은 그냥 도매에서 박스로 사온 겁니다.
물론 몇몇은 자기 농장에서 키운 걸 조금씩 가져오기도 했습니다.
예를 들면 고추나 허브 같은 건 실제로 농장에서 따와서 팔기도 했죠. 그걸로 농장 이야기를 하면서 소비자에게 신뢰를 주고, 나머지 대부분은 도매에서 사온 걸 곁들여 파는 겁니다. 말 그대로 '믹스 앤 매치' 장사였던 거예요.
결국 진짜 차이는 '유기농 여부'였는데, 그들도 따로 유기농 도매를 사는 게 아니라 그냥 일반 도매 농산물을 들여왔습니다.
그렇다 보니 차라리 크로거나 홀푸드에서 유기농 코너에서 장 보는 게 훨씬 낫다는 결론이 나오더군요. 게다가 파머스 마켓 물건들은 몇 시간 동안 뜨거운 주차장에 방치된 후 팔리는 경우도 많아서 신선도도 의심스러웠습니다.
달라스 파머스 마켓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번지르르하게 꾸며놓긴 했지만, 실제 농산물은 적고 가격은 터무니없이 비쌌습니다.
현지 분위기나 사람 구경, 가볍게 산책하는 데는 나쁘지 않지만, '제대로 된 장터'로 기대하고 가면 실망할 수밖에 없어요. 오히려 예전 파머스 마켓 경험을 떠올리니, 지금 이곳은 더더욱 '아트 페어' 느낌이 강했습니다.
55살 나이에 이런 경험을 하고 나니, 오히려 "내가 괜히 너무 옛날식으로 생각했나?" 싶기도 합니다.
요즘 파머스 마켓은 단순히 농산물 교환의 장이 아니라 '체험형 공간'으로 바뀌고 있는 것 같아요. 친구들이랑 놀러 와서 사진 찍고, 수제 비누나 향초 하나 사 가는 재미로 들르는 곳. 정기적으로 장 보러 오는 시장이라기보다는 '일요일 오후 잠깐 산책하기 좋은 곳' 정도로 보면 괜찮지 않을까 싶네요.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달라스 파머스 마켓은 한 번쯤 가서 분위기를 즐기는 건 재미있지만, 장 보러 갈 기대는 하지 않는 게 맞습니다.
저처럼 파머스 마켓의 본래 취지를 기억하고 있는 세대라면 실망스러울 수밖에 없겠지만, 그냥 "현지 아트 페어"라 생각하고 가면 적당히 즐길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