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리를 잘 해먹는 사람일수록 이상한 증상이랄까 일종의 병이 하나 생긴다.
냉장고가 점점 "작품 보관소"가 된다는 거다.
문제는 그 작품을 다시 안 본다는 데 있다.
한 번 정성 들여 만들어 놓고, 딱 한 끼 먹고 끝.
다음 끼니가 되면 그 음식은 이미 "어제의 것"이 되어버린다.
입맛이 아니라 마음이 거부한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새로움'에 끌린다. 특히 직접 요리하는 사람은 더하다.
재료 고르고, 레시피 생각하고, 불 조절하고, 마지막 플레이팅까지.. 이 과정 자체가 이미 하나의 이벤트다.
그러니까 음식은 결과물이 아니라 "프로젝트의 엔딩"이다.
한 번 엔딩 봤으면, 다시 같은 게임을 바로 이어서 하고 싶은 마음이 잘 안 생긴다.
더 웃긴 건, 요리 잘하는 사람일수록 더 심해진다는 점이다. 왜냐면 선택지가 많기 때문이다.
냉장고 열어보면 "어제 만든 갈비찜"이 있는데, 동시에 머릿속에는 "오늘은 파스타 한 번 해볼까?"가 떠오른다.
이 순간부터 어제 음식은 이미 경쟁에서 밀린다. 맛이 없어서가 아니다. '지루함'에서 진 거다.
또 하나 중요한 포인트가 있다. '완성도 집착'이다.
요리 잘하는 사람은 자기가 만든 음식의 "최고 상태"를 알고 있다.
방금 완성됐을 때의 온도, 식감, 향. 그 기준이 머릿속에 박혀 있다.
그런데 냉장고에 들어갔다 나온 음식은 그 상태가 아니다.
아무리 다시 데워도 그 미묘한 차이가 느껴진다. 그러면 "이건 그때 그 맛이 아니야." 여기서부터 흥미가 떨어진다.
그리고 은근히 큰 게 "자기 보상 심리"다. 요리를 한다는 건 귀찮은 노동이다.
칼질하고, 설거지하고, 시간 쓰고. 이걸 해냈다는 건 스스로에게 보상을 줄 이유가 생겼다는 뜻이다.
그래서 다음 끼니에도 또 뭔가 새롭게 해먹고 싶어진다. 어제 만든 걸 또 먹는 건, 뭔가 보상을 덜 받는 느낌이다.
"나 오늘도 요리했는데 왜 어제 거 먹어?" 이런 감정이 은근히 올라온다.
여기에 살짝 비틀린 심리 하나 더 있다. "이미 경험한 맛에 대한 흥미 감소"다.
처음 먹을 때는 뇌가 바쁘다. 맛 분석하고, 만족하고, 기억에 저장한다.
그런데 두 번째 먹을 때는 이미 알고 있는 정보다. 놀라움이 없다. 인간은 놀라움이 줄어들면 만족감도 같이 떨어진다.
그래서 같은 음식이어도 두 번째는 감동이 덜하다. 그걸 본능적으로 피하는 거다.
그래서 냉장고가 어떻게 되냐. 점점 "애매하게 남은 용기들"로 채워진다.
한두 숟갈 남은 찌개, 반쯤 남은 볶음, 정체불명의 소스. 버리긴 아깝고, 먹자니 손이 안 간다.
이게 쌓이면 나중에 한 번에 정리하게 된다. 그때 드는 생각이 딱 하나다. "내가 왜 이걸 모아놨지?"
요리 잘하는 사람은 음식을 먹기 위해서라기보다, 만들기 위해서 요리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까 결과물에 대한 집착이 생각보다 약하다. 만들 때 이미 만족을 다 써버린다.
먹는 건 보너스고, 두 번째 먹는 건 이미 보너스도 아니다.
결국 이 문제의 본질은 맛이 아니다. '새로움 중독 + 완성도 기준 + 자기 보상' 이 세 개가 합쳐진 결과다.
그래서 해결도 단순하다. 일부러 양을 줄이거나, 애초에 "다음 끼니까지 먹을 메뉴"를 따로 정해야 한다.
안그러면 쌓이는 반찬을 다시 익혀 먹거나 버릴건 버리는 정리 시간이 필요해질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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