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스턴에서 즐기는 Feliz Cinco de Mayo! - Houston - 1

오늘 아침에 H-E-B 갔다가 깜짝 놀랐다.

입구부터 솜브레로 모자 쓴 마네킹이 있고, 코로나 맥주랑 라임은 한 세트로 묶여서 "Fiesta Pack"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더라.

옆에 있던 아주머니가 카트에 라임을 넣으면서 "오늘이 Cinco이잖아, Cinco!" 하는데, 아 맞다, 오늘이 5월 5일이지.

휴스턴 산 지 몇 년 되니까 이제 1년 달력이 좀 다르게 보인다.

한국 사람한테 5월 5일은 어린이날이지만, 여기서는 어린이날 따위 없고 그 자리에 싱코 데 마요(Cinco de Mayo)가 떡 하니 자리 잡고 있다.

처음 이 동네 왔을 때는 솔직히 "멕시코 독립기념일이겠지" 하고 넘어갔는데, 알고 보니 그게 아니더라.

싱코 데 마요, 사실은 독립기념일이 아니다

멕시코 독립기념일은 9월 16일이고, 싱코 데 마요는 따로 있다.

1862년 5월 5일에 멕시코 푸에블라(Puebla)라는 도시에서 멕시코군이 프랑스군을 상대로 기적 같은 승리를 거둔 날이다.

그것도 당시 세계 최강 군대였던 프랑스를 말이다.

이그나시오 사라고사 장군이 이끄는 멕시코군이 숫자도 적고 무기도 후달리는데도 프랑스를 박살낸, 그야말로 다윗과 골리앗 같은 사건이었다고 한다.

근데 더 재밌는 건, 정작 멕시코 본토에서는 이 날을 그렇게 거하게 안 챙긴다는 거다.

우리도 한산대첩일이라고 하면 "그게 언제더라?" 하는 거랑 비슷하지 않을까.

그런데 이상하게도 미국에서는 이날이 거의 국경일급으로 커져버렸다.

휴스턴 인구의 절반 가까이가 히스패닉이다. 그러니까 싱코 데 마요는 사실상 동네 잔치다.

아무 식당이나 가도 마리아치 밴드가 트럼펫 들고 등장하고, 마가리타는 해피아워 끝나도 해피아워 가격이고, 타코 트럭 앞에는 줄이 골목 끝까지 늘어선다.

내 단골인 워싱턴 애비뉴 쪽 멕시칸 식당은 이날만큼은 예약을 안 받는다.

그냥 줄 서서 들어오라고. 작년에 친구랑 갔다가 한 시간 반 기다렸는데, 줄 서 있는 동안 옆집 바에서 마가리타를 손에 쥐어주더라.

"기다리면서 마시세요"라는 거다. 이게 무슨 자본주의의 따뜻함인지, 아니면 알코올로 인내심을 사겠다는 건지 헷갈리지만 기분은 좋았다.

휴스턴에서 즐기는 Feliz Cinco de Mayo! - Houston - 2

특히 하이츠(Heights)나 이스트 다운타운(EaDo) 쪽 가면 그날 저녁부터 거리가 통째로 잔치판이다.

푸드트럭, 라이브 밴드, 어디선가 갑자기 등장한 폴라로이드 사진사, 솜브레로 모자 쓰고 셀카 찍는 백인 형들, 손녀 손잡고 나온 멕시코 할머니들.

휴스턴 살면서 배운 건데, 싱코 데 마요에 Tex-Mex만 먹으면 좀 아쉽다.

점심은 타케리아(taqueria)에서 알 파스토르 타코 세 개. 점심부터 무거운 거 먹으면 저녁 못 버틴다.

저녁은 친구들 불러서 엔칠라다나 몰레(mole) 시켜놓고, 마가리타는 무조건 on the rocks, 소금 묻혀서.

어른의 마가리타는 차가운 얼음 위에서 라임이 톡 쏘는 그 맛이 진짜다.

집에서 해 먹을 거면 과카몰리는 무조건 직접 만들어라. 아보카도 으깨고, 라임즙, 소금, 다진 양파, 실란트로(고수), 그리고 할라피뇨 살짝. 끝이다.

가끔 한인 친구들이 "그거 우리랑 무슨 상관이야?"라고 묻는데, 휴스턴 살면 사실 다 상관 있다.

우리 옆집도 멕시칸이고, 회사 동료도 절반이 라티노고, 단골 세탁소 사장님도 멕시코 분이다.

이런 동네에서 싱코 데 마요를 모르는 척 하는 건 좀 무례한 느낌이랄까.

한국에서 외국인 친구가 추석에 송편 한 입 베어 무는 거 보면 괜히 기분 좋잖아. 그거랑 비슷하다.

올해 싱코 데 마요는 화요일이다. 평일이라 좀 아쉽긴 한데, 그래도 휴스턴은 평일이고 뭐고 없다.

퇴근하고 동네 멕시칸 식당 한 군데만 들러도 충분히 축제 기분 낼 수 있다.

타코 두어 개랑 마가리타 한 잔, 그리고 옆 테이블 멕시칸 가족들 웃는 소리. 그거면 된다.

어쨌든, ¡Feliz Cinco de Mayo! 오늘만큼은 라임 듬뿍 넣고 즐기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