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AA나 AA 건전지를 리모컨부터 장난감, 무선 마우스, 벽시계, 손전등까지 넣고 사용했는데, 요즘은 USB 케이블 하나만 있으면 뭐든 충전되고 다시 작동된다. 사실상 이 작은 원통형 배터리는 '디카 시대'와 함께 전성기를 누렸다가 스마트폰 시대 이후로 서서히 뒷방으로 밀려난 느낌이다.

2025년도 현재에도 배터리 시장 자체가 완전히 사라지진 않았지만 끼어들 틈이 점점 줄어드는 게 보인다.

이제는 장난감도 충전식, 미니 선풍기도 충전식, 전동칫솔도 충전식, 심지어 면도기까지 USB-C로 충전하는 시대다. 그 와중에 AAA, AA 배터리는 여전히 마트에서 "혹시 나 필요하지 않나요?" 하고 구걸하듯 자리 잡고 있다.

웃긴 건 한때 충전식 배터리(Ni-MH)가 엄청난 미래 기술처럼 떠들썩했는데, 요즘은 리튬이온(Li-ion) 제품에 밀려 얌전히 구석에 처박혀 있다는 거다. 누가 요즘 충전식 AA 배터리 사서 충전기 꽂고 밤새 기다리나?

USB-C 케이블 하나면 30분이면 80% 충전되는 세상에서, '건전지 충전기'라는 물건 자체가 과거 전화기 모뎀으로 사용하던 인터넷처럼 느껴진다. 그러다 보니 alkaline 배터리같은 일반 건전지는 더욱 설 자리가 없다. 뭔가 잘못된 것도 아니고 고장 난 것도 아닌데 시대가 이렇게 흘러가면서 사람들이 관심을 잃어버린 거다.

그렇다고 건전지 시장이 완전히 죽었느냐? 그건 또 아니다. 시계, TV 리모컨, 무선 문 열림 센서, 장난감, 레이저 포인터, 벽걸이 온도계 같은 '한 번 끼우면 반년을 버티는 제품들'이 여전히 건전지에 기대고 있다.

이게 애매한 포인트다. "충전식으로 바꾸기엔 귀찮고, 건전지를 계속 쓰자니 왠지 후진 것 같고." 소비자들은 갈팡질팡하고, 배터리 회사들은 예전처럼 잘 팔리진 않지만 그렇다고 망하진도 않는 참 미묘한 상태에 있다.

시장은 줄었지만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이유가 적당히 계속 사주는 '습관성 소비' 때문이다. 쉽게 말해, 그냥 대체할 생각이 없어서 유지되는 시장이다.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USB 충전 제품은 대부분 리튬 배터리를 내장하고 있고 배터리를 스스로 교체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요즘 사람들은 고장 나면 수리보다 "그냥 새 제품 사야지" 하니까, 배터리를 갈아끼우는 AA/AAA 방식이 오히려 더 친환경일 수도 있다. 근데 웃기게도 환경을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충전식 리튬 제품을 산다. 결국 제품을 자주 버리면서도 "나는 충전식이니까 친환경적이야"라고 착각하는 이상한 소비 트렌드가 만들어진 셈이다.

건전지 시장은 줄긴 줄었고 앞으로 더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완전히 사라지진 않을 거다. 건전지는 작은 구석에서 오래 버티는 끈질긴 생존자다.

모두가 USB 충전하는 시대에, 여전히 아무 말 없이 리모컨 뒤에 들어가 묵묵히 일하는 서민형 에너지 노동자. 그게 AA와 AAA다. 사람들이 화려한 스마트 기기를 자랑하며 충전 케이블을 들고 뛰어다니는 동안, 이들은 '한 번 넣어주면 최소 몇 달은 조용히 돌아가는' 묵직한 충성심으로 살아남고 있다.

하지만.... 20년뒤에는 또 어떻게 변할지는 모르겠다. 곰곰히 생각해보아도 그때에도 배터리를 사다 쓸지 안쓸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