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 전 그 장면은 아직도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1야드. 단 1야드였다. 그때 1야드만 더 나아갔다면 NFL 역사는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TV 앞에서 멍하니 앉아 있던 그날의 허탈함은, 시애틀 팬이라면 누구나 가슴 한쪽에 남아 있는 상처일 것이다.

그런데 2026년 2월 8일 그 오래된 응어리가 마침내 풀렸다.

시애틀 시호크스가 29-13 로 승리를 거두고 다시 한 번 빈스 롬바르디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북가주 산타클라라 리바이스 스타디움에서 열린 제60회 슈퍼볼.

상대는 공교롭게도 그 악몽을 안겨줬던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였다.

결과는 29-13. 숫자만 보면 여유 있는 승리 같지만 단순한 우승이 아니라 지난 시간 전체를 정리하는 한 판이었다.

경기 초반부터 분위기는 시애틀 쪽이었다. 화려한 공격 대신 차분하고 묵직한 운영.

키커 제이슨 마이어스가 1쿼터 33야드 필드골로 첫 점수를 만들었고, 이후에도 39야드, 41야드를 연달아 성공시키며 전반을 9-0으로 마쳤다.

요즘 NFL이 공격 중심 리그라고 하지만, 이 팀은 완전히 다른 길을 선택한 느낌이었다.

점수는 적었지만 흐름은 확실히 시애틀이 잡고 있었다.

3쿼터에도 마이어스의 또 한 번의 필드골. 12-0. 이쯤 되니 팬으로서 오히려 불안해졌다.

슈퍼볼에서 필드골만으로 앞서가는 상황은 언제든 뒤집힐 수 있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해, 뉴잉글랜드라는 이름 자체가 주는 트라우마가 있었다.

하지만 이번 시애틀은 달랐다. 4쿼터 초반, 쿼터백 샘 다널드가 타이트엔드 AJ 바너에게 16야드 터치다운 패스를 꽂아 넣으며 19-0. 그 순간, "아, 오늘은 진짜 다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뉴잉글랜드도 바로 반격하며 19-7로 추격했지만, 여기서부터는 시애틀의 진짜 무기가 등장했다. 바로 질식 수비였다.

패트리어츠 공격은 계속 막혔고, 시애틀은 다시 필드골로 점수를 벌렸다.

그리고 경기의 하이라이트는 종료 4분여 전. 코너백 데번 위더스푼의 블리츠. 쿼터백을 덮치며 공을 떨어뜨렸고, 그 공을 라인배커 우체나 은워수가 주워 44야드를 그대로 질주했다. 터치다운. 점수는 29-7. 사실상 그 순간 경기는 끝났다.

이 장면을 보면서 떠오른 생각은 하나였다. 11년 전에는 1야드가 부족했고, 이번에는 수비가 44야드를 만들어냈다는 것. 결국 시애틀이라는 팀의 정체성은 변하지 않았다. 이 팀은 화려함보다 힘과 조직력으로 이기는 팀이다.

경기가 끝나고 선수들이 트로피를 들어 올리는 모습을 보는데, 묘하게 마음이 편해졌다. 팬으로서 오랫동안 남아 있던 감정이 정리되는 느낌이었다. 스포츠가 단순한 경기 이상의 의미를 가지는 순간이 바로 이런 때인 것 같다.

시애틀에서 오래살다가 엘에이로 이주해서 살고있는 나는 나이를 먹고나서 예전처럼 모든 시애틀 경기에 열광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런 순간이 있기 때문에 NFL을 계속 보게 된다. 승리 그 자체보다, 시간이 지나도 팀과 함께 감정을 공유하고 있다는 느낌. 그게 팬으로 사는 재미다.

그리고 오늘은 확실히 말할 수 있다. 시애틀은 11년 전의 패배를 잊은 것이 아니라 제대로 갚았다.

그리고 그 설욕을 가장 시애틀다운 방식으로 해냈다.

그리고 당분간은 이 기분 오래 즐겨도 될 것 같다. Go Hawk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