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 쿡 카운티 살다가 샌안토니오 북쪽, 조인트베이스 근처로 이사온지 좀 되었다.

이동네는 개발된 도시라기보다는 사람이 자연 한가운데로 들어와서 집을 지어 살고 있다는 느낌이 더 강하다.

처음 이사왔을때 집 근처에 나무들과 풀들이 많고, 밤이면 별도 잘 보이고, 무엇보다 사슴이 돌아다녀서 좋아했다.

시카고 사는 친구는 문 열면 집 앞에 사슴이 서 있다니 얼마나 좋냐고 부럽다고 했다.

그 말만 들으면 진짜 디즈니 영화 한 장면 같다. 아침 햇살 속에서 사슴이 고개를 들고 사람을 바라보고, 음악이라도 깔릴 것 같은 장면 말이다.

그런데 실제로 여기서 살아보면 그 상상은 오지개 금방 깨진다. 매일 문열면 집앞에 서있는 사슴은 귀엽고 순한 캐릭터가 아니다.

사람하고 교감하려고 다가오는 동물이 아니라 경계심 잔뜩 가진 야생동물이다.밤새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아침에 문 열고 나오면 바로 알 수 있다.

쓰레기통을 쓰러트리고 쓰레기 봉지는 죄다 찢겨 있고, 안에 있던 과일 껍데기며 음식 냄새 나는 것들은 전부 뒤져 놓는다.

집앞 길이나 뒷마당은 사슴때문에 누가 일부러 어질러 놓은 것처럼 엉망이다.

처음엔 야생동물이니까 그럴 수 있지 하고 넘기지만, 이런 일이 계속되면 솔직히 짜증이 난다.

더 무서운거는 해만 지면 이놈의 사슴들이 무리지어서 여기저기 많이 돌아다닌다.

사슴이 야행성인지 잘 모르지만 하여튼 밤에 더 많이 돌아다니는것 같다. 좀비영화에 왜 사슴이 자주 나오는지 여기 살면 좀 이해가 된다.

그리고 가뜩이나 가로등도 별로 없는 주택가 도로에서 갑자기 사슴이 튀어나오는 순간은 정말 심장이 내려앉는다.

헤드라이트 불빛에 놀라서 사슴이 찻길로 뛰어드는 건 순식간이고, 브레이크를 끝까지 밟아도 이미 늦은 경우가 많다.

차는 앞부분이 크게 망가지고, 사슴도 보통 죽거나 크게 다친다. 다행히 접촉사고가 없었어도 밤길 운전에 휘청거리게 되는 큰 복병인것에는 변함이 없다.

게다가 숫놈 사슴은 번식기가 되면 성격이 완전히 달라진다. 그때 보면 숫놈들이 뿔이 괜히 달린 게 아니라는 걸 바로 알게 된다.

일부러 사람을 공격하는 건 아니지만, 근처에 얼쩡거리다가 돌발 행동을 하면 사람도 다칠 수 있다.

그래서 아이들이나 체구 작은 사람이 마주칠까 봐 괜히 더 걱정하게 된다. 동네 커뮤니티에서도 사슴을 보면 사진 찍으려고 다가가지 말고 그냥 거리를 두라는 얘기가 계속 올라온다.

처음 이사 왔을 때는 다들 사슴 보고 와 신기하다, 자연 속에 사는 것 같다고 말하지만 몇 년 지나면 생각이 달라진다.

사슴은 귀여운 이웃이 아니라 늘 조심해야 할 존재다. 멀리서 보면 자연이고 풍경이지만 가까이 살면 현실적인 골칫거리다.

문 앞에 사슴이 서 있는 장면을 상상하는 건 좋지만 실제로 같이 사는 건 전혀 다른 이야기다.

디즈니는 영화 속 이야기고 샌안토니오의 사슴은 오늘도 아무렇지 않게 우리 동네 쓰레기를 뒤지며 밤이면 무단횡단의 정수를 보여주며 돌아 다닌다. 가끔 사슴 사냥허가 시즌이 나오는것도 같은데... 나는 총사는거 귀찮아서 그건 패스.

그래도 아이들은 사슴보고 좋아하니까 쓰레기 단속좀 잘하고 밤에 천천히 운전하고 다니면 크게 해되는것은 없는것 같다.

사실 따지고 보면 원래 옛날부터 사슴살던 동네에 인간들이 몰려 들어와서 사는거니까... 여기 샌안토니오 지역에서 몇백대를 살던 로컬들 아니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