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 부쩍, 아버지의 손을 자주 보게 된다.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그런 것도 아닌데, 자꾸만 그 손등의 주름에 시선이 멈춘다.
대화 중에도, 밥을 드실 때도, 물을 따르시거나 리모컨을 드실 때도 — 그 손등이 유난히 내 눈에 들어온다.
그 주름은 단순한 나이의 흔적이 아니라, 아버지의 지난 인생을 고스란히 새겨놓은 어떤 기록처럼 느껴진다.
아버지는 달라스 외곽에 있는 바디샵을 30년 넘게 운영하셨다.
90년대 초, 이민 초창기부터 손에 기름 냄새를 묻히고 망치와 스패너, 자동차 수리일을 하셨었다.
사람 좋은 성격으로 손님들과 잘 지내고, 판금솜씨가 아주 좋다는 말이 퍼지면서 꽤 자리를 잡았다.
그렇게 아버지는 손으로 먹고 살았다. 거칠고도 정직한 손이었다.
놀라운 건, 아버지는 술도 거의 안 하시고, 담배도 젊은 시절에 잠깐 피우다 끊으셨다.
규칙적인 생활을 하시고, 삼시세끼 챙겨 드시는 분이다.
지금도 매일 아침 같은 시간에 일어나고, 무리하지 않고 동네를 산책하시며, 스스로 건강을 잘 관리하신다.
그래서일까. 아버지 얼굴을 보면 혈색이 좋고, 허리도 꼿꼿하시다.
60대 초반이라 해도 믿을 만큼 정정하시고, 실제로 미국인들 대부분은 아버지를 보면 놀라곤 한다.
“73이라고요? 설마요.”
하지만 그 손등을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주름이 참 깊다.
정말, 남들보다 몇 배는 더 깊다.
손등의 피부는 햇볕에 그을리고 기름과 먼지에 닳아, 얇고 건조해졌다.
핏줄이 도드라지고, 군데군데 굵게 갈라진 주름은 마치 세월에 맞서 싸운 상흔 같다.
목주름도 그렇다. 다른 데는 젊은데, 그 부위만큼은 세월이 앞질러 간다.
그 손을 바라보면 마음이 묘해진다.
이제는 정비 일을 거의 그만두셨고, 바디샵도 후배에게 넘기셨지만, 그 손은 여전히 일터에 있는 것처럼 보여진다.
나는 지금 43세다. 이제는 나도, 아버지가 나를 키우던 그 나이가 되었고, 문득문득 거울 속 내 모습에서 아버지를 본다.
그럴 때마다 아버지 손이 생각난다.
그 손등의 주름은, 아무리 건강하고 정정해도 시간은 흐른다는 걸, 몸이 먼저 말해주는 듯하다.
한 번은 아이를 안아주는 아버지의 손을 보고 멈칫한 적이 있다.
“우리 아버지 손이 이렇게 작았던가.”
언제 이렇게 마르고, 또 이렇게 주름졌나.
나도 모르게 울컥했다.
그 손은 예전처럼 나를 안아주거나, 혼을 내던 그 손이 맞는데, 이제는 내 아이의 등을 토닥이는 할아버지 손이 되어 있었다.
세월이라는 게 이렇게 오는구나 싶었다.
소리 없이, 그러나 손등의 주름 하나하나에 깊이 새겨진 채로.
손등의 주름은 늙은 것이 아니다. 그건 살아온 세월이 남긴 무늬다.
그리고 나는, 언젠가 내 손에서도 그런 무늬가 피어나기를 바란다.
아버지처럼, 담백하고 강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