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뱅크 근처 베리듀고 힐스 아래쪽 주택가에 살다 보면, 한밤중 쓰레기통 근처에서 고양이만 한 큰 쥐같은걸 가끔 보게됩니다.

처음 본 사람들은 "세상에 미국 쥐는 왜 이렇게 커" 라고 말들은 하는데 이 친구는 쥐가 아닙니다.

미국에서 유일하게 주머니를 가진 유대류, 그러니까 캥거루 먼 친척인 오포섬입니다.

LA 지역의 밤거리에 나타나는 야행성 동물이죠.  한국에는 오포섬과 비슷한 동물이 없다 보니, 길에서 마주쳐도 야생동물이라는 인식보다 "미국 쥐가 엄청 크더라!" 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기에다 영어권 지역 주민들 사이에서만 공유되는 생활 정보가 한인 커뮤니티에는 잘 전달되지 않다보니 오포섬은 미국에 사는 사람들에겐 익숙한 이웃이지만, 한국 이민자들에게는 여전히 정체 모를 밤손님처럼 남아 있는 셈입니다.

그리고 오포섬은 평소엔 잘 안보이는데 오포섬이 원체 철저한 야행성에다 성격이 극단적으로 소심합니다.

동네가 조용해지는 밤 10시 이후에야 조심조심 나타나 활동을 시작합니다. 사람 소리만 나도 바로 숨고, 위급하면 사람앞에서 입벌리고 누워서 죽은 척을 합니다. 유투브에 오포섬 죽은척 하는거 보면 정말 약해보이고 사람에게 무해합니다. 

낮에는 보통 나무 구멍이나 하수구, 한적한 집 데크 밑이나 창고 구석 같은 곳에서 낮잠을 잡니다. 그래서 우리가 낮에 오포섬을 볼 일은 거의 없습니다.

겉모습 때문에 오해를 많이 받지만, 사실 오포섬은 도시 최고의 청소부입니다. 진드기, 바퀴벌레, 달팽이, 쥐, 심지어 작은 뱀까지 닥치는 대로 먹습니다. 연구에 따르면 오포섬 한 마리가 한 시즌에 진드기 수천 마리를 먹어치운다고 합니다.

마당에 떨어진 썩은 과일이나 죽은 동물 사체도 말끔히 처리해 줍니다. 우리가 보기엔 쓰레기 뒤지는 것처럼 보여도, 사실 동네 위생 관리 담당입니다.

그럼 위험하냐고요. 거의 무해합니다. 오포섬은 체온이 다른 포유류보다 낮아서 광견병 바이러스가 살기 힘든 몸입니다.

개나 고양이보다 광견병에 걸릴 확률이 훨씬 낮습니다. 입을 벌리고 이빨을 드러내며 쉬익 소리를 낼 때가 있는데, 그건 공격이 아니라 제발 오지 말라는 절규입니다. 실제로 먼저 덤비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안타까운 건 도로 위 현실입니다. 올리브 애비뉴나 글렌오크스 대로를 다니다 보면 유독 오포섬 로드킬을 자주 보게 됩니다. 시력이 나빠서 전조등을 보면 도망가지 않고 그대로 멈춰버리고, 걸음도 느린 데다 위험하면 죽은 척하는 본능이 자동차 앞에서는 오히려 치명적이기 때문입니다.

버뱅크 주민이라면 오포섬을 마주쳤을 때 이렇게 생각하면 됩니다. 우리 집 진드기 청소하러 왔구나.

무서워하지 말고 그냥 지나가게 두세요. 밤에는 반려동물 사료를 집 안으로 들이고 쓰레기통 뚜껑만 잘 닫아도 불필요한 만남은 줄어듭니다.

오포섬은 징그러운 거대 쥐가 아니라, LA지역뿐만 아니라 미국의 많은 지역에서 밤에 쓰레기를 먹어치우는 소심한 환경미화원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