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미국 달러 얘기 나오면 "기축통화라는 왕관을 너무 오래 쓰고 있더니 방심한 거 아니냐?"라는 생각부터 듭니다.

잘 알다시피 달러는 전 세계 결제수잔의 기본 통화죠. 기름 살 때도 달러, 국제채권도 달러, 각국 중앙은행 외환보유액도 달러 입니다. 그러니 미국은 돈이 모자라면 그냥 채권 찍고 그걸 또 달러로 막으면 됩니다.

문제는 이게 지금은 멀쩡해 보여도, 오래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는 거죠.

세계가 달러를 필요로 하니까 미국이 빚을 쌓아도 시장이 "그래도 미국이잖아" 하면서 사줍니다. 국가부채가 수십 조 달러를 넘어가도 여전히 미국 국채 금리가 기준이니, 이쯤 되면 거의 세계가 미국에 단체 외상 넣어주는 수준입니다.

그런데 이 빚의 구조를 뜯어보면 더 웃깁니다. 채권자는 미국 국채를 들고 있는 각국 중앙은행, 연금펀드, 금융기관, 일본·중국·영국 같은 나라들이고, 미국 안에서는 연준, 사회보장기금, 월가가 왕창 들고 있죠. 채무자는 말할 것도 없이 미국 정부. 한 줄 요약하면, 미국 정부가 빚을 내고 전 세계가 그 종이를 경건하게 모셔주는 구조입니다.

진짜 재미는 이제부터입니다. 빚이 너무 커지면 이자 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데, 그걸 또 돈 찍어서 메우기 시작하면 달러 가치가 미끄러지기 시작하죠. 달러가 슬슬 약해지면 다른 나라들은 "어, 이거 좀 위험한데?" 하면서 보유 비중을 줄이고, 그러면 미국은 더 높은 금리를 줘야 채권을 팔 수 있습니다.

금리 올리면 재정 부담 더 커지고, 다시 빚 늘고... 이렇게 멋진 악순환 루프 완성입니다. 이게 바로 기축통화 특권이자 함정입니다. 너무 쉽게 빚을 내다 보니, 근본적인 재정 다이어트는 미루고 "일단 버티고 보자" 모드로 가는 거죠.

당장은 별 문제 없어 보입니다. 세상이 불안해지면 국제 금융권은 또 달러를 매집하고 달러 우산 아래로 도망칩니다.

집에 불이 나도 "그래도 이 집이 제일 안전해" 하면서 다시 들어가는 느낌이랄까요. 그런데 장기적으로 보면 균열이 하나둘 보입니다. 몇몇 국가는 교역 통화를 유로·위안으로 나누고, 중앙은행들은 슬쩍 금을 더 사 모으고, "달러만 믿고 죽 가도 되나?" 하는 눈치를 보기 시작하죠.

결국 미국의 빚은 미국 국민의 미래 세금으로 갚아야 할 숙제입니다. 세계는 채권자이고 이해관계자지만, 막판에 계산서 들고 문 두드릴 대상은 미국 정부와 국민입니다. 달러는 여전히 왕좌에 앉아 있지만, 그 왕관이 꽤 무겁습니다.

기축통화라는 폭신한 쿠션 위에 누워 낮잠 자는 것처럼 보이지, 알람 한 번 잘못 울리면 엄청 크게 구조조정해야 할 날이 올 수도 있습니다.

지금의 달러 시스템은 결국 "신뢰"라는 얇은 판 위에 서 있습니다. 지킬 땐 아무 일 없고, 무너지기 시작하면 생각보다 빠릅니다.

겉으로는 화려한 저택처럼 보이지만, 안쪽 벽에 금이 가고 있는지 수시로 점검해야 안전한 집이죠.

미국이 "우린 특별해" 모드로 계속 빚만 키울지는 앞으로 부채가 늘어나는 속도와 정책 방향이 말해줄 거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