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상 인류는 어디서 태어나고 어떤 신을 믿었든 간에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부적' 같은 물건을 만들어 몸에 지니거나 집안에 두면서 보이지 않는 힘을 빌리고 싶어 했다는 것입니다.

한국이나 중국에서 익숙한 부적은 불길한 기운을 막는 용도인데, 사실 이런 비슷한 개념은 서구 사회에도 고스란히 존재했습니다.

서구에서는 중세 시절 '아뮤렛(amulet)'이나 '탈리스만(talisman)'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구분이 있습니다. 가톨릭에서 사용하는 성물이나 상본, 묵주, 십자가, '기적의 패(Miraculous Medal)' 등은 흔히 오해하듯이 '부적'이 아닙니다.

천주교에는 악귀를 물리치거나 복을 가져다주는 주술적인 부적 개념이 존재하지 않습니다.묵주나 십자가는 주술적인 힘을 지닌 물건이 아니라, 하느님의 은총을 청하는 기도의 도구일 뿐입니다.

성물은 신앙생활을 돕는 보조 도구로서 사용되며, 그것을 부적처럼 여기거나 맹신하는 것은 미신적인 행위로 간주되어 삼가야 합니다. 결국 가톨릭에서의 성물은 '주술적 보호막'이 아니라 '기도와 신앙을 이끌어주는 매개체'라는 점에서 차이가 분명합니다.


중동 이슬람권에서는 '하마사(hand of Fatima, 파티마의 손)'라는 손 모양 부적이 대표적입니다.

악한 시선을 막아준다고 해서 지금도 문이나 차에 걸어두곤 합니다.

아프리카 부족들은 동물 뼈나 돌에 정령의 힘이 깃든다고 생각해서 목걸이로 만들어 몸에 지녔으며, 북미 인디언들 사이에서는 '드림캐처'가 유명합니다. 악몽을 거르고 좋은 꿈만 남긴다고 믿었던 그물 모양의 장식품입니다.

사람들이 배를 타고 바다로 나아갈 때도 부적의 개념은 빠지지 않았습니다.

고대 그리스 배의 뱃머리에 새겨진 눈 모양 장식은 '바다의 신이 길을 지켜준다'는 의미였으며, 바이킹의 용머리 장식도 악령과 적을 위협해 배를 지킨다고 여겨졌습니다.

동양의 배에서도 용, 봉황, 거북 같은 신성한 동물을 새겨 넣어 풍랑을 잠재우고 무사 귀환을 기원했습니다. 결국 뱃머리 장식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바다라는 불확실한 세계에서 안정을 찾으려는 고대인들의 바다 부적이었던 셈입니다.

이쯤 되면 흥미로운 질문이 생깁니다.

왜 인간은 서로 다른 문화권에서 비슷하게 '부적'을 만들어냈을까요? 답은 의외로 단순하면서도 깊습니다.


그것은 불확실성 때문입니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병, 사고, 전쟁 같은 통제할 수 없는 사건 앞에 놓이게 됩니다.

이때 이성적으로는 아무 대책이 없으니, 심리적인 장치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부적은 눈에 보이지 않는 '안전벨트' 역할을 해주면서 불안감을 다스리는 도구였던 것입니다.

철학적으로 보면 부적은 인간이 스스로와 우주 사이의 균형을 맞추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플라톤이 말하던 이데아처럼 보이지 않는 완벽한 세계가 있다고 믿었고, 동양에서는 음양의 조화를 중요시했습니다.

결국 사람들은 현실에서 부족한 힘을 상징물에 투영해서 마음의 균형을 찾은 것입니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세계를 그래도 조금은 다스릴 수 있다"라는 위안을 얻은 셈입니다.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부적이 단순히 개인의 안심용을 넘어 공동체의 결속에도 기여했다는 사실입니다. 모두가 같은 부적을 공유하거나 제사 의식에서 함께 사용하면서, "우리는 같은 힘에 의지하고 있다"라는 소속감을 확인했습니다. 철학자 뒤르켐이 말한 '집합의식'이 바로 이런 맥락일 것입니다.

결국 부적은 단순한 미신의 산물이 아니라, 인간이 불안과 맞서고 세계와 관계를 맺는 방식 중 하나였던 것입니다. 과학이 발달한 지금도 사람들은 여전히 행운의 팔찌를 차고, 자동차 안에 작은 장식을 걸어놓고는 합니다.

그것이 다 현대식 부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종교적 신앙에서 사용되는 성물과는 달리, 부적은 '주술적 힘'에 기대는 것이고 성물은 '하느님의 은총과 기도'에 연결된다는 차이를 분명히 알아두는 것이 필요합니다.

어쩌면 부적은 사라지지 않는 인간 본능, 불확실한 세계에서 조금이라도 마음의 안전망을 만들고 싶은 욕구의 표현일 것입니다.

그러나 신앙 안에서 그것을 혼동하지 않고 바른 의미로 구분하는 것, 이것이 현대인에게 더 중요한 태도일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