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살면서 경상도 산골에 있는 고향 생각이 문득문득 납니다. 특히 건축을 업으로 삼고 살아온 제 입장에서는, 한국의 전통 건축인 한옥이 주는 매력이 참 크게 다가와요.
나무와 흙, 기와로 이루어진 집, 마당 한가운데에 햇살이 들어오고, 사방으로 바람이 드나드는 그 구조. 사진만 봐도 마음이 차분해지죠.
그래서 주변 사람들이 종종 물어요. 한옥 짓고 살수 있을까요?
실상은, 미국에서 한옥을 짓고 사는 건 낭만은 있어도 현실적으로 쉽지 않습니다.
첫 번째이자 가장 큰 이유는 냉난방 문제입니다.
한옥은 기본적으로 자연 환기와 단열을 바탕으로 지어진 구조라, 한국의 사계절에 맞게 설계된 겁니다. 겨울엔 아궁이에 불을 때서 온돌로 바닥을 덥히고, 여름엔 창문을 활짝 열어 바람을 불러들이는 방식이죠. 그런데 미국, 특히 제가 사는 로스앤젤레스나 플로리다 같은 지역은 기후가 다르고, 주거 시스템 자체가 HVAC, 그러니까 중앙 냉난방에 맞춰져 있습니다. 한옥에 억지로 에어컨과 난방기를 설치한다고 해도, 기밀성이 낮은 구조 탓에 에너지 손실이 커서 효율이 떨어집니다. 쉽게 말하면, 여름에는 시원한 공기가 죄다 빠져나가고, 겨울에는 따뜻한 공기가 금방 날아가 버리는 거죠. 에너지 비용이 천정부지로 올라가는데, 이건 현실적으로 감당하기 힘듭니다.
둘째는 건축 자재와 시공 문제입니다.
한옥은 나무와 황토, 기와 같은 전통 자재로 짓는데, 미국에서 이 재료들을 구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있더라도 수입 비용이 엄청나게 비싸죠. 현지 목재를 쓰면 되지 않느냐 하시겠지만, 한옥 구조는 단순히 나무로만 해결되는 게 아닙니다. 짜맞춤 방식이나 기와 얹는 기술 같은 전통 시공법이 필요한데, 이걸 제대로 아는 장인이 미국에 얼마나 있을까요. 한국에서 장인을 모셔와 시공한다고 해도, 인건비와 체류비가 더해져서 집 한 채 짓는 데 들어가는 비용은 상상을 초월할 겁니다.
셋째는 법적, 제도적 문제입니다.
미국 건축법은 기본적으로 목조 주택이나 철근 콘크리트 구조를 전제로 규정이 짜여 있습니다. 그런데 한옥은 기와 지붕, 처마, 온돌 구조 같은 독특한 방식이라 현행 규정과 충돌할 가능성이 큽니다. 예를 들어, 온돌을 만들려고 아궁이를 설치한다면 이는 화재 위험 설비로 분류될 수 있고, 기와 지붕은 구조 계산이 다르게 나와서 허가 과정에서 제동이 걸릴 수 있습니다. 즉, 허가 자체가 쉽지 않다는 얘기죠.
넷째는 생활 방식의 차이입니다.
한국에서는 마당에 앉아 바람 쐬고, 마루에 걸터앉아 차 한 잔 마시는 게 자연스러운 생활이지만, 미국의 생활 패턴은 다릅니다. 차고, 거실, 오픈 키친 같은 현대식 공간을 선호하고, 실내외 구분이 뚜렷합니다. 한옥 특유의 열려 있는 구조는 프라이버시 측면에서도 불리합니다. 미국은 대지가 넓다지만, 오히려 사생활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창문과 문이 크게 열려 있는 집은 불안하게 느껴지기도 하죠.
다섯째는 유지 관리입니다.
한옥은 숨 쉬는 집이라 불립니다. 그 말인즉슨, 늘 관리가 필요하다는 뜻이기도 해요. 나무는 곰팡이나 벌레에 취약하고, 기와는 주기적으로 손봐줘야 합니다. 한국에서도 유지 관리가 쉽지 않은데, 미국에서 한옥을 지으면 전문 업체가 거의 없어 보수할 때마다 엄청난 비용과 노력이 듭니다.
결국 미국에서 한옥을 짓고 산다는 건, 낭만과 현실 사이의 간극이 너무 크다는 걸 의미합니다.
건축 전문가로서 저도 한 번쯤은 해보고 싶은 로망이지만, 실제로 가능성을 따져보면 효율성과 비용, 법규, 생활 패턴까지 여러 장벽이 버티고 있습니다. 물론 요즘은 현대식 한옥이라 해서, 전통적인 외형에 단열과 냉난방을 강화한 형태도 나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건 사실상 '한옥 콘셉트의 현대 주택'이지, 우리가 떠올리는 전통 한옥은 아니죠.
나이가 들수록 고향에 대한 향수 때문에 이런 생각을 더 자주 하게 됩니다.
"엘에이 마당 한가운데 한옥을 딱 짓고 살면 얼마나 멋질까." 상상만 해도 기분은 참 좋습니다. 하지만 건축은 낭만만으로 지어지는 게 아니잖아요. 비용과 효율, 제도와 생활, 그 모든 현실을 감안해야 가능한 일입니다.
그래서 결국 제 대답은 늘 같습니다. "한옥은 한국에서, 미국에선 그냥 사진으로 보며 그리워하는 게 맞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