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2년전 한국에 갔을 때 우연히 친척권유로 살풀이 무용 공연을 관람했습니다.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공연을 보다보니 단순히 춤이라기보다 의식에 가까운, 묘한 울림이 있었습니다.

살풀이란 게 본래 무속에서 비롯된 거잖아요.

해를 끼친 업보가 결국 자신에게 되돌아온다는 믿음, 그리고 그 부정적인 기운—'살'이라고 부르는 것—을 풀어내려는 의식이죠.

그때 공연을 보면서 사람 마음속 깊은 데 있는 죄책감이나 두려움을 풀어내려는 몸짓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이후로 살이라는 개념이 제 머릿속에서 자주 맴돌았습니다.

누구에게 해를 끼치면, 그것이 언젠가 내게 돌아온다.

마치 우주적 에너지가 균형을 맞추는 것처럼 말이죠.

딜러 일을 하다 보면 손님과 가격 흥정을 하면서 솔직하지 못하게 굴고 싶은 순간이 생깁니다.

"조금만 비싸게 팔아도 모르겠지?" 이런 생각이 들 때요.

근데 살풀이 공연을 본 뒤로는, 그 순간마다 '이게 다 내 업보로 돌아올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떠오릅니다.

그러면 괜히 겁이 나서 억지로라도 솔직하게 얘기하게 되더군요.

흥미로운 건, 비슷한 메시지가 불교나 기독교 같은 종교에도 있다는 겁니다.

불교에서는 '모든 생명에게 자비로워야 한다'고 하고, 기독교에서도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잖아요.

전혀 다른 문화권에서 나온 종교들인데, 결국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건 이웃에게 해 끼치지 말라는 겁니다.

왜냐면, 남에게 던진 돌이 결국 내 창문을 깨뜨릴 수도 있으니까요.

사실 현대 도시 생활을 하다 보면 사람한테 상처 주는 일이 너무 흔합니다.

길에서 차선 하나 끼어드는 것부터 시작해서, 회사에서 동료를 험담한다거나, 가정에서 가족에게 짜증을 내는 것까지.

그 순간에는 별거 아니라고 넘어가지만, 결국 그게 다 누적되어서 나한테 스트레스로, 혹은 인간관계 문제로 돌아오더라고요.

저는 이걸 '현대판 살'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살을 피하는 방법은 뭘까? 공연을 본 뒤로 제가 내린 결론은 의외로 단순합니다.

종교적인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 꼭 특정 종교의 교리를 따르라는 게 아니라, 사람을 대할 때 기본적으로 해치지 말고, 가능하면 따뜻하게 대하라는 태도 말이에요.

불교식으로 말하면 자비, 기독교식으로 말하면 사랑, 무속식으로 말하면 살풀이. 결국 다 같은 메시지 아닐까요?

저도 완벽하진 않습니다. 손님하고 신경전 벌이다 보면 속에서 짜증이 치밀어 오르고, 경쟁 딜러들 얘기 들으면 괜히 질투도 납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살풀이 무용에서 본 흰 소매가 떠올라요.

그 흩날리는 천이 마치 제 안에 맺힌 어두운 기운을 털어내는 듯했습니다.

그래서 억지로라도 마음을 가다듬습니다.

"괜히 내 말 한마디가 살이 되어 돌아올 수 있다." 이렇게 스스로 다잡는 거죠.

결국 제가 배운 건 이겁니다. 살을 피하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이웃에게 잘하는 것.

비즈니스에서도, 가정에서도, 심지어 모르는 사람과의 일회적 만남에서도요.

그게 꼭 종교적 교리를 믿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이 편안해지기 위해서라도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살풀이 공연을 본 건 몇 년 전이지만, 그때 느낀 메시지는 지금도 여전히 제 삶에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무속의 언어로 보나, 불교의 가르침으로 보나, 기독교의 교리로 보나 결국 방향은 같더군요.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가능하다면 사랑으로 대하는 것.

그게 곧 내게 되돌아오는 해를 피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 아닐까 싶습니다.